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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Oct 24. 2023

꿈의 직업 (연재 9)

꿈의 직장 인도양에서 

해적이 출몰하는 위험한 해협을 지나면 호수와 같이 맑은 인도양이 펼쳐진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파란 수평선만 보이고 밤에는 하늘의 별만 보이면 선원들은 천문학자가 된다. 갈릴레오가 오래전에 지구가 둥글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거기에는 한국의 원양어선인 듯 "동원 501호"가 참치를 잡고 있었다. 반가워 손을 흔들어 주고 우리는 인도 뱅골만으로 진입하였다. 이번 목적지는 캘커타항이다. 해도에 마킹된 항로를 컴퍼스로 재어 보니 ETA(예정 도착 시간 Estimated Time of Arrival)는 24시간 . 신혼 주말부부가 토요일이 기다리듯 선원들의 상륙은 항상 새롭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가슴이 뛰고 설렘의 시작이다.


 선박의 해기사(항해사, 기관사)는 꿈의 직장이다. 대학 때는 의, 식, 주를 해결해 주고 학비까지 면제해 준다. 졸업하고 취업하면 병역을 면제해 주고 거기에 고액(육상의 1.5~2배)의 월급까지 받는다. 마찬가지 의, 식, 주가 해결된다. 상륙하면 수당이 따로 주어진다. 해외여행을 할 수 있고 세계 각국에 친구와 애인을 둘 수 있다. 출, 퇴근 시간 5분이면 된다. 콩나물처럼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길이 막힐 염려도 없다. 모두 자기만의 시간이다. 선박에는 영화관, 노래방, 체육시설, 도서관이 있다. 술과 담배도 면세로 구입가능하여 아무리 비싼 양주도 반가격에 마실 수 있다. 정말 좋은 직장이다. 막 승선한 3등 기관사가 철학자가 되어 잠깐 침대에 누워 자기 위안을 해 봤다. 


싱가포르 여인 링링이 건네준 사진(80년대는 흑백)을 액자로 만들어 책상 위에 걸어 놨다. 이 사진을 보면서 편지를 썼다. 한, 영한사전을 뒤져 가면서 한 줄 한 줄을 이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그립고 보고 싶다는 감정 표현인데 문맥과 문법이 맞는지 모른다. 



바다가 항상 호수 같고 기관고장 없이 순항한다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꿈의 직장이지만 자연은 공평하지 않다. 편안한 오후 당직을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기관실에서 쇠망치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엔진이 멈추었다. 선박이 바다에서 엔진이 멈춘다는 것은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멈추는 것처럼 위험하다. 선박이 방향을 잡지 못하여 표류할 수 있다. 거센 풍량이라도 만나면 아무리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이다. 기관부 10명 전원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쏜살 같이 집결했다.  엔진 소리가 멈추면 자동으로 기관실에 모이게 된다. 엔지니어는 그만큼 예민하다. 피스톤링이 파손되어 배기 밸브가 고착되었다. 이곳은 아열대 지역으로 대기 온도는 40도 기관실 온도는 50도다. 선박 엔진은 3층으로 되어있고 출력은 15,000마력(말 만오천 마리 힘)이다. 달아 오른 엔진이 어느 정도 냉각된 후 기관부 전원 엔진 분해 작업을 했다. 크랭크 참바 속은 아직 열이 남아 있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선박은 70년대 일본에서 건조한 노후선을 도입해 컨테이너로 개조한 선박이다. 낡은 선박이라서 엔진 고장이 자주 일어났었다. 6시간 동안 기관실에서 작업하면서 기름과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수리를 마치고 인도를 향해서 힘찬 뱃고동을 다시 울렸다.


해적의 위험도 엔진 고장의 어려움도 이겨내고 드디어 인도 캘커타 항구에 입항했다. 한강보다 몇 배 큰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세관 수속을 마치고 대리점에서 내게 한 통의 편지를 건네줬다. 꽃이 그려진 링링의 국제 편지였다. 향긋하였다. 펜촉에 잉크를 묻혀 또박또박 쓴 필기체였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인쇄체에 익숙한 나는 필기체 손 편지를 읽을 수 없었다. 사전을 옆에 두고 한 글자 한 글자 암호 해독 하듯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한 통의 편지를 이해하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편지지가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내일은 캘커타 상륙하는 날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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