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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Nov 13. 2023

TITANIC (타이타닉),PATTAYA (연재 14)

방콕 파타야 해변에서




   



외출 준비를 하였다. 먼저 오물로 뒤집어쓴 머리를 몇 번이나 깨끗이 감았다. 손톱사이 낀 씨커먼 벙커오일도 말끔히 제거하였다. 작업복에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샤넬 향수까지 뿌렸다.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하듯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멋진 소년으로 둔갑하였다.

1983년, 23세, 총각이다. 유교를 믿는 엄격한 농촌 집안에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누에고치로 덮고 있다. 여자를 사귈 기회가 없었다. 남자들은 군대 입대하기 전에 반 강재로 총각딱지를 띠어준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흔들어 맥주병 따듯이 직업여성에게 동정을 바친다. 나는 그럴 기회도 없었다.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승선을 하였다.

링링을 만난다는 게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혼자가 아니고 어머니와 함께 왔다.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여 대화도 가끔 끊겨 어색한 분위기를 몇 번 넘겼었다. 어머니 앞에서  꿔다논 보릿자루가 될까 봐 걱정이다. 

링링과 싱가포르에서 만남은 우연히 하늘에서 내려준 인연이었다. 남녀 관계가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할 줄은 몰랐다. 싱가포르에서 어머니와 함께 먼 나라 태국까지 왔다. 첫눈에 반한 것도 장례를 약속한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비행기를 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신혼여행도 고작 부곡온천이나 경주 보문단지 정도였다. 좀 산다고 하는 집안의 신혼들이 제주도 여행정도였다. 해외를 나가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반면 싱가포르는 잘 사는 도시국가다. 동남아 여행은 이웃집 드나들듯 흔한 일이었다. 

혼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3 항사와 여자친구인 수지아와 동행하기로 했다. 여행 가이드를 부탁을 하였다.


우리는 약속장소인 힐튼호텔 로비를 찾아갔다. 링링을 보는 순간 이산가족 상봉하듯 꿈인지 아닌지 보고 또 봤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어머니가 오히려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사랑하면 콩깍지가 씐다고 하였다. 콩깍지가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수지와의 안내로 우리 일행은 수상보트를 타고 짜오 프라야강을 따라 투어를 하였다. 태국에서 제일 큰 강, 수도 방콕을 관통하는 강, 어머니와 같은 젖줄. 서울의 한강, 어떤 수식어도 부족하다.  수상보트는 빨강, 노랑, 파랑 전철 노선처럼 색으로 구분이 되었다. 노선표에는 정확하게 정류장(선착장) 표기가 되어있어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내부는 버스와 비슷하지만 의자밑에 구명조끼가 비치되어 있었다. 강가의 병풍 같은 파노라마는 영화 속에 쏙 빠져 든 기분이었다. 물 위에 나무 기둥을 박아 그 위에 집을 지었다. 그림 같은 집이지만 장마철에 홍수라도 나면 어떨까 걱정이 되었다. 수상가옥은 물론 은행, 학교, 사찰, 시장등 도시 전체가 물 위에 떠있는 것 같았다. 조정 경기장이나 볼 수 있는 카누들이 쉼 없이 강을 질주하고 있었다. 강 위를 달리는 택시들이다. 프로펠러가 달려있어 속도도 빠르다. 강에는 신호등도 교통순경도 없지만 사고도 없다. 교통체증이 없어 출퇴근 시 방콕시민들은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방콕은 물의 도시였다.


수지아는 방콕에서 가까운 해변을 안내해 줬다. 파타야해변이었다. 하얀 백사장과 높은 빌딩은 부산 해운대를 연상시켰다. 파타야는 60년대 초까지 작은 어촌이었다. 오늘날 관광지로 발돋움한 것은 인접국 베트남 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60년에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1975년까지 15년간 진행이 되었다. 수백만명의 살상자가 발생하는 전쟁 중에도 미군은 포탄을 피해 이곳 파타야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미군들의 성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많은 여성이 필요했다. 부족한 여성은 키 큰 남성이 변장하여 대리 충족시켰다. 유흥업소에 게이들이 여성보다 더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었다. 미군들의 의해서 파타야는 다양한 밤문화와 성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웃나라에서는 폭탄의 섬광이 번쩍이고 있지만 파타야 해변은 휘황찬란한 밤이 되었다. 원숭이가 살던 숲은 빌딩숲으로 변하여 인종 백화점이 되었다.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어 날로 번창하는 부유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일행은 파타야 해변에서 요트를 임대하였다. 50톤 정도 되는 꽤 큰 요트였다. 25톤 이하는 소형선박조종사 면허가 있어야 되지만 25톤 이상 되는 요트나 선박은 임시항해증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국제 해기사 면허를 갖고 안전교육을 이수하여 직접 운항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3 항사가 선장이 되고 나는 기관사가 되었다. 우리는 먼바다로 나갔다. 승객은 링링과 어머니, 수지아 3명이다. 링링의 어머니 천해림 (陈海林 천하이린)께서는 한국의 조선과 해양산업에 크게 관심을 갖고 계셨다. 바다를 좋아하시고 고향은 중국 산동성 칭다오 (青岛 Qingdao)이다. 존함도 海林이다. 한 시간 정도 항해를 하여 코란 섬에 도착하여 잠깐 닻을 내리고 해변을 걸었다. 오염되지 않은 모래는 하얀 눈처럼 눈이 부셨다. 열대의 뜨거운 태양도 수북이 쌓여있는 하얀 눈을 녹이지 못했다. 맑고 투명한 바닷속은 산호무덤과 대왕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큰 거북이도 유유히 물속에서 유영을 즐기고 있었다. 수족관 같았다. 원주민은 거북이를 만나면 술을 한병 대접하여 얼큰하고 기분 좋게 바다에 보낸다고 한다. 정부는 거북이를 보호 동물로 취급하였다.  원주민은 바다의 용왕으로 모신다. 꼬란 섬은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와 열대우림이 빗어 낸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바다는 푸르고 반짝이는 에머럴드 빛이었다. 더 멀리 더 멀리 항해를 하였다. 해양경찰에서 임시로 허가해 준 항해 구역은 육지로부터 24마일이었다. 해도에 표기를 해 뒀다. 푸른 바다는 우리들의 것이었다.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오렌지색 열대의 뜨겁게 달구어진 구름은 붉은 수평선위에서 용광로처럼 끓고 있었다. 석양을 감상하러 링링과 톱브리지(Top Bridge 옥상)에 올라갔다. 타이타닉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이다.  황홀한 순간이었다. 나는 Handrail(난간대)에 의지하여 링링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봤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짝 눈을 감아 주었다. 멀리서 등대의 조명이 링링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살포시 얼굴을 잡고 입술을 대었다. 눈물과 열대의 땀방울이 입술을 통하여 혀로 전달이 되었다. 짭짤하였다. 더 찐한 포옹을 하였다. 그 속에는 사탕보다 더 달콤한 사랑이 있었다. 입술은 자석이 되어 떨어질 줄 몰랐다. 잔잔하면서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ost Titanic "'My heart will go on"이었다. 


Near, far, wherever you are

가깝던, 멀던, 그대가 어디에 있어도

I believe that the heart does go on

난 내 마음이 영원하리라고 믿어요

Once more you open the door

한 번만 더 문을 열어보았죠

And you're here in my heart

그댄 내 마음에 있어요

And my heart will go on and on

그리고 내 마음은 영원할 것이에요


링링과의 사랑은 태평양과 인도양이 막고 있다. 오작교도 없는 하늘 같은 바다이다. 바람도 분다. 태풍도 분다. 빙산도 만난다. 링링과 나, 잭과 로즈는 타이타닉처럼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대문사진- Titanic 영화에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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