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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Nov 26. 2023

7화 내 고향 변산해수욕장

바닷가 어린 시절

변산해수욕장은 1933년에 개장된 서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이다. 하얀 백사장위에 지은 관수정이라는 건물은 일제 때 건축한 일본식 구조이다. 일본인들의 휴양지로 즐겼던 곳이다. 6.25가 끝난 1955년부터는 가까운 미군 공군부대의 휴양지로 변화되었다. 가까운 곳에 변산에서 제일 높은 산 의상봉(해발 508m)이 있었다. 산밑에 비득지라는 제법 큰 마을에는 미군 가족들과 대한민국 공군 가족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최초의 아파트였을지 모른다. 

 변산반도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제일 높은 의상봉 정상에 하얀 버섯이 3개가 우뚝 솟아 있었다. 변산반도 지붕이다. 

월명암에서 본 의상봉 (변산초딩 36회 채희성 사진작가 촬영)

미군 공군 레이다이다. 북한에 있는 조그만 비행기도 감시할 수 있는 대형 레이다이다.  미군 군사 비밀 지역 때문에 지도에도 표기가 되지 않았고 등산로도 없어 그 주위는 얼씬도 못했다. 하서면 비득지에서 올라가는 길은 있지만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남여치에서 출발 등산로를 따라 쌍선봉(해발 459m)이나 월명암에서는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다. 버섯모양의 레이다는 UFO가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경관이 수려하다. 군사지역이라 산신령만이 접근가능한 곳이다. 월명암을 찍고 남여치 반대방향으로 하산을 하면 직소폭포를 구경할 수 있다. 폭포 밑에는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선녀탕, 옥수담이 있다. 선녀탕에서 발을 담그고 씻은 다음 낮은 산을 넘으면 석포리와 내소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변산반도는 한국의 8경에 속하고 1988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었다. 백제가 멸망한 후 독립운동을 벌이던 주류성이 있고, 6.25 때는 빨치산이 내변산에 거주를 하면서 투항하였다. 허생전에도 등장하는 곳이 변산이다. 변산반도는 군사, 역사, 정치적으로 요충지대였다.

 국민학교 6학년쯤 여름이었다. 미국사람 코쟁이들을 영화에서 볼 수 있었지 실물은 본 적이 없었다. 주말에는 의상봉에 있던 미군들이 하산을 하여 변산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긴다. 그때만 해도 피서객이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미군들은 시냇물이 흐르는 한적한 곳에 텐트를 치고 즐겼다. 시냇물에는 1 급수만 살 수 있는 남생이와 민물가재. 참게들이 살고 있었다. 거기에 웅덩이가 있었는데 남생이 웅덩이이라 했다. 거기에는 미군들이 시원하게 보관해 놓은 음료수와 음식 박스가 놓여있었다. 깡통이나 포장된 비닐팩은 처음 보는 물건들이었다. 사춘기 때 무엇을 봐도 신기할 때였다. 호기심에 가득 찬 소꿉친구 상식이와 나는 풀 속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남생이 웅덩이에 놓여있는 캔과 음식을 훔쳐와 바위 밑에 움푹 파인 동굴 속에 들어가 먹어 봤다. 갈색 깡통은 밋밋한 맛이었으나 시원하고 처음 마셔본 음료라 한 캔을 다 마셨다. 정신이 몽롱했다(맥주였다). 빨간 깡통도 마셔봤다. 세상에서 이런 청량한 맛은 처음이었다. 시골에서 기껏해야 시원한 사카린 물이나 타먹던 촌놈한테는 하늘로 치솟는 맛이었다(콜라였다). 길쭉하게 대나무에 꽂혀있는 물컹한 것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인 줄 알고 쪽쪽 빨아 봤다. 아니었다. 크림도 아닌데 맛은 고기이면서 입에서 살살 녹았다(어묵이나 소시지였다). 처음 맛본 음식에 처음 취해본 기분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동굴 속에서 한숨 잤다. 미국사람처럼 키가 쭉쭉 커가는 기분이었다. 

기다려지는 주말이다. 다음날 또 가봤다. 이번에는 실패다. 미군들한테 들켰다. 행실이 구정물이 줄줄 흘리는 불쌍한 소년으로 봤던지 빨간 캔하나와 길쭉한 거 하나씩만 주면서 "돈 드링크 Don't drink~~ 게라리어 Get out of here " 하면서 가라는 신호를 주었다. 돈을 내고 먹으라는 것인지 다음에 또 오라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다니는 형님들한테 물어봤다. 그런 단어도 문장도 없다고 한다. 시골 중학교 영어 선생님도 원어민 발음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 영어가 술 마시지 말고 꺼지라는 욕, 맥주와 콜라가 대중화되기까지 수년이 흘렀다. 

변산해수욕장에서 초라한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소절이었다.

 <그때 그 시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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