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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Nov 25. 2023

6화 내 고향 대항리 (1)

대항리 패총

내가 살던 고향은 변산면 대항리다. 변산해수욕장과 바닷가를 경계로 첫 번째 동네다.

행정구역상 새만금방조제 전시관이 있는 서두터를 시작으로 묵정리, 조개미(합구), 해수욕장 방포(마웅개), 자미동이 모두 대항리에 포함이 되어있다.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시작하는 동네이다. 

대항(大港)이라서 먼 옛날 혹시라도 큰 항구가 있었는지 나름 조사해 봤지만, 유례는 없고 큰 항구가 아닌 다른 한자 대항(大項)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변산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밀물과 썰물 사이가 거의 1km나 되어 수심이 나올 만한 바다가 없다. 기껏해야 1톤짜리 어선을 댈 수 있는 바닷가다.

격포나 곰소항은 그래도 꾸준히 준설을 하여 100톤까지 접안을 할 수 있는 항구로 발전하고 있다.  


대항리는 앞에는 비안도가 보이고 맑은 날은 멀리 위도와 선유도까지 보이는 곳이다. 영화"변산" 촬영한 곳이다. 주인공 소녀는 작가이며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마지막 엔딩 부분도 변산 국민학교 강당에서 촬영하였다. 영화 줄거리와 주인공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보는 도중 몇 번이나 울었다.


동네 앞에는 할매 바위와 검은 바위가 있다. 정확히 네이버 지도를 확대해 보면 이름도 없는 조그만 바위섬이 좁쌀 두 개로 표기돼 있다 양 섬 거리는 1km쯤 된다. 실제 거리를 재보진 않았지만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 그 사이 펄에는 호주머니에 소금 한 주먹 갖고 가서 똥그란 구멍이 아닌 타원형 구멍에 살짝 뿌리면 죽합이 기어 나온다. 잽싸게 삽이나 호멩이로 파면 잡을 수 있다. 똥그란 구멍은 개불 구멍이다. 죽합은 모양이 대나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사람들은 맛조개라 한다. 어릴 때 잡았던 조개는 대나무 한 마디, 20cm나 됐다. 맛조개와 죽합은 생긴 것만 비슷하지 크기로는 다른 종이다.


할매바위와 검은 바위는 변산해수욕장이나 대항리에서 고개만 살짝 돌리면 볼 수 있는 바위섬이다.

할매바위는 밀물과 썰물 조금때와 사리 때를 불문하고 그냥 떠 있는 바위섬이고 검은 바위는 물때에 맞추어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비의 바위섬이다. 모르는 관광객들은 바위섬에 들러 굴도 따고 조개도 잡아가는 데 실제로 검은 바위는 무서운 곳이다.

해수욕장에서 물놀이 중 익사하면 해류를 따라 검은 바위까지 떠밀려 온다. 그 바위틈에서 시체가 발견된 적이 있어 대항리 사람은 송장 바위라고도 부른다. 썰물 때 빠른 해류가 바위를 한번 소용돌이치고 먼바다로 흘러가고 들물 때 빠른 해류 때문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구조 요청한 사람도 몇 있다. 


어릴 때 우리 할머니한테 거기에 물귀신이 살고 있으니 절대 가지 말라고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익사 사고도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지금 군산대학교 해양연구센터 자리에는 1970년대 군산수산 초급대학 임해 훈련소가 있었다. 수산이나 해양계 대학은 수영이 필수 과목이라서 1주일 동안 해양 훈련을 받고 수영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한다. 훈련을 받던 대학생들의 익사사고가 크게 난적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국민학교도 졸업 못했지만 밀물과 썰물 시간대를 정확히 계산해서 알고 계시고, 대항리 앞바다의 해류와 암초등을 손바닥 보듯 다 알고 계셨다. 큰 항구에는 도선사가 있지만 대항리 항구에는 우리 할머니가 계신다. 물귀신 나오는 바위는 해마다 계속해서 사망사고가 난다. 할머니는 귀신도 보이는 것 같다.


꺼문바위에는 조개류도 많이 살지만, 해초류가 많아 검게 된 것 같았다.

잘 찾아보면 파래와 톳, 쎄미, 지초문. 꼬시래기등 해초들이 바위에 붙어 파도에 펄럭이고 있었다.

작은 돌멩이를 들어 올리면 방칼기(꽃게종류이나 집게발이 유난히 큼), 똘짱기(돌게), 다시락(다슬기), 고동, 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잘못하다 방칼기에 물렸다 하면 손가락 하나는 잘라지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당시는 해수욕장이 흔하지 않았다. 전라도에는 변산해수욕장 충청도에는 대천해수욕장이 있다. 서해안에서는 딱 두 곳밖에 없었다. 수많은 피서객이 떠나고 찬바람이 부는 9월쯤은 해방조개와 배꼽(골뱅이)이 뻘밭 모래반 묻혀있었다. 호미나 다른 기구도 없이 한 시간 정도 맨손으로 뻘을 파다 보면 성인 한 사람이 못 짊어 질정도 마대 포대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해방조개는 노랑조개였는데 일제에서 해방되면서 굶고 살았던 변산 사람들에게 기쁨을 줬다고 해방조개라 이름을 지어 줬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쇠벵이(멸치와 벤딩이 중간 어종) 떼를 발견하면 마을 사람 누구든 첫 발견자는 웃통을 벗고 바위 위에서 돌리면서 “호야~호야~”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 밭일하다가도 모두 맨발로 뛰어가 그물을 짊어지고 바다에 나갔다. 그물을 펼쳐 잡아 땡 기면 대한통운 한 트럭만큼 올라올 때가 있었다. 모두 곰소 젓갈시장으로 직행했다. 멸치 대용으로 말려 먹고 젓 담아 먹고 생것은 회로 버무려 먹고 호박 넣어 매운탕 해 먹었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검색해도 없는 물고기다.


대항리 압구 사망암 노리목 주로 바닷가에 사는 마을 사람만 기억할 뿐 사라진 물고기다. 쇠벵이 만큼 또 많이 잡았던 고개미(작은 새우종류)도 한 소쿠리씩 잡아 올렸다. 고개미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해수욕장이 패장 될 때쯤 찬 바닷물과 함께 대항리, 합구, 노리목등 갯벌로 몰려 들어왔다. 이럴 때면 아무리 들일이 바빠도 고개미 떼를 놓칠 수 없다. 대나무와 모기장을 이용해 만든 그물을 밀고 다닌다. 건져 올려 식초를 넣고 매운 고추장과 버무려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 또한, 젓갈로 담고, 김장할 때도 여지없이 고개미 젓을 넣는다.


대항리 갯벌은 예로부터 동죽, 바지락, 맛등이 풍부하여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이 되었다. 1967년경 대항리 패총이 발견이 된 것이다. 8000여 년 전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빗살무늬토기가 발견이 되었다. 어릴 적에 조개 무덤에서 나오는 토기나 유물로 소꿉놀이 하였는데 그것이 선사시대 유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안는다. 


사진캡처 : 네이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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