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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Nov 18. 2023

5화 산불조심

쥐불놀이 (2)

내 초등학교 6학년 때쯤, 들에는 들쥐, 집에는 집쥐, 쥐들의 세상이었다. 얼마나 쥐가 많았으면 정부에서 쥐 잡기 운동이 무슨 국책사업처럼 전국 총동원령을 내렸다.

쥐꼬리를 학교 숙제인 것처럼 의무적으로 가져가야 했다.


쥐를 못 잡으면 쥐꼬리 비슷한 검정 고무줄을 쥐꼬리 크기에 맞춰 끊어갔다. 들켜서 배기택 선생님에게 손바닥을 쥐꼬리 가져오라는 숫자만큼 맞은 적이 있다.

쥐는 번식력이 엄청나게 강해 새끼를 10마리씩 한 달이면 몇 번을 낳는지 모른다.

시골에는 완전 쥐들 세상이었다.

밭두렁이나 논두렁에는 쥐구멍도 많았다. 쥐구멍인지 두더지 구멍인지 뱀 구멍인지 좌우지간 불쏘시개를 구멍에 넣고 불을 지피는 순간 서너 마리 쥐가 갑자기 튀어나와 겨울철 땔감용으로 준비해 둔 태금이네 나무 벼늘(나무를 쌓은 더미)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털에 불이 붙은 쥐는 폭탄이나 마찬가지다. 나무 벼늘에서 자폭한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있는 사이 나무 벼늘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다. 친구들 몇몇이 진압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붙은 불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119 소방대원도, 수돗물도 없다. 양동이로 가까운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다가 불을 꺼 야는 데 마을 사람들 모두 동원되어 양동이 하나씩 들고 와 부었지만 꺼질 리 없다. 그렇게 태금이네 나무 벼늘이 순식간에 새까맣게 재로 변해 버렸다.


그날도 안 죽을 만큼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았다. 옆에서 엄니 그러신다. 감옥까지 갈뻔한 아들을 보고 집안 망신은 다 시키고. 속창아리가 없던가 쓸게 빠진 놈, 너갱이 빠진 놈, 지금까지 들어 보지도 못한 심한 욕을 하신다. 당신이 어렵게 낳은 자식한테 얼마나 분하셨으면 그랬을까. 그래도 태금이 아버님과는 이웃사촌처럼 지내는 사이라서 애들이 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하신다.


변상 안 해도 된다는데 울 아버지 나무 몇 다발을 태금이 집에 가져다주시고 그날부터 아버지와 나는 나무를 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두 집 나무를 아버님 혼자 하시기에는 벅차 셨는지, 평소에 아들 한 테만큼은 가난과 지게를 물려주지 않으려는 확고한 신념도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내 과실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미니 지게를 지어야만 했다. 아담하고 나에게 딱 맞는 지게였다. 6학년이지만 5km 먼 통학 거리를 맨날 뛰어다녀 다리는 튼튼하고 부모님한테 수시로 맞았기 때문에 몸은 단단하고 강건했다. 키도 다른 애들보다 약간은 컸다.


아버지는 먼저 지게 운전 법을 알려 주셨다. 물건을 떨어지지 않도록 센터를 잘 맞추고 멜빵을 조절해 어깨에 멘 다음 양다리를 기마자세로 벌린 후 짝대기를 땅에 고정하고 힘을 주면서 일어나야 한다며 시범까지 보여 주셨다.


일어나자마자 중심을 잡아야지 그냥 넘어진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동작 빠르게 지게 위쪽 구멍에 짝대기를 꼽아서 평형을 유지하며 걸어야 하고 힘이 어느 정도 들면 언덕에 받쳐놔야 다음에 일어날 때 힘이 덜 든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비록 6학년이지만 지게로 30kg은 거뜬히 지고 다녔다.

짝데기는 없으면 안 될 보조 기구였다. 일어설 때 지렛대, 짊어지고 걷기 시작하면 밸런스 유지, 내려갈 땐 브레이크, 올라갈 땐 지팡이, 쉴 때는 지게를 세워놓은 상태에서 고정할 수 있는 파킹용 사이드 브레이크다.


풀밭에 뱀도 쉽게 잡을 수 있고 꿩이나 산토끼도 한방에 때려잡을 수 있는 사냥 도구고 사람을 해치는 멧돼지를 만나면 호신용으로도 가능하다. 지게는 짝데기 없으면 아무런 쓸모없는 농기구다. 짝대기는 Y 형자로 잘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박달나무나 참나무가 최고였다.


집에서 가까운 산은 주인이 있고 산림청에서 나무 채취를 금지해 놓았다. 나무하러 가려면 최소 고개를 하나 넘어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 했다. 대항리에선 주로 흑나산까지 갔다. 부안 땜과 변산해수욕장을 가로막는 중간에 있는 산맥이다.


나무 종류도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북새기와 나무줄기, 그리고 끌틍(일제때 통나무를 베어간 썩은 그루터기와 뿌리)이다. 할아버지께서 원래 변산은 소나무로 우거진 산이었는 데 일본 놈들이 다 베어갔다 하신다.


나는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북새기로 솔잎, 솔방울, 활엽수 나뭇잎을 갈퀴로 긁어모으면 된다. 살아있는 나무는 산림청에서 불허하고 감방 간다.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나는 푸대로 2푸대를 꽉 채워 짊어졌다. 그래도 30kg은 훌쩍 넘는다. 아버지는 클틍나무 한 지게를 짊어지시고 부자지간 나무꾼이 되어 내려온다. 새까맣게 타버려 재만 남은 태금이네 나무 벼늘에 부려놓고 빈 지게만 지고 터덜터덜 집으로 왔다.


훌쩍 커버린 중학생이 되어서는 아버님은 튼튼한 참나무로 만든 성인용 지게를 멋지게 만들어 주셨다. 대항리는 비탈길이 많아 리아까(rear car 일본식 발음)나 경운기가 닿지 않는 밭이 많아 그 성인용 지게로 아버지 농사일을 도울 수 있었다.


십수 년이 흘렀다. 

나는 60년생 쥐띠이다. 마누라는 쥐를 제일 싫어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쥐와 잘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님 닮아간다고 한다. 남들 클 때 뭐 했냐고 걸어 다닐 때 왜 구부정하냐며 어깨 좀 펴라고 한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 지게 지고 뎅기느라 중학교 때 크고 말았다. 어깨도 그때 구부정해서 펴지지 않는다. 왜? 남자의 자존심을 건들지 마!” 그러나 나는 아들한테 지게는 대물림 안 했다. 그렇게 우리는 웃고 있었다.


감방에 갈뻔한 밤나무골 이야기도, 죽은 밤나무에서 싹이 트고 다시 밤이 열릴 때까지 십수 년이 걸렸다. 산에는 진달래도 피고 뻐꾸기도 울었다. 추억을 생각하면서 밤나무골을 거처 당산 몰랭이 까지 가고 싶었지만, 숲이 우거져 들어갈 수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나무지게를 지고 다녔던 그 길도 우거져 온데간데 없어졌다.

지금이 쥐불놀이하기 가장 좋을 때다. 물론 산불이 나기에도 쉬운 계절이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산불 나기 쉬운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모든 산불은 조그만 실수로 발생합니다. 우리 모두 산 불조심합시다.


사진출저: SBS News

최경열 / 변산출생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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