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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Nov 15. 2023

4화 쥐불놀이(1)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

쥐불놀이는 원래 음력 정월의 첫째 자일子日(쥐 날)에 밭두렁이나 논두렁의 잡초에 불을 지펴 태우는 농촌의 문화고 민속놀이였다. 논밭 두렁의 말린 잡초 속에는 해충의 알과 쥐새끼들이 많아 다음 해 농작물에 해를 끼치므로 농한기를 이용한 농부들의 지혜고 풍년을 기원하는 오랜 전통이다. 어른들이 행하는 농촌 풍경이지만 게임이나 놀이기구가 없는 어린애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재미있는 놀이였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민속문화인지 전통문화인지 상관없이 그런 불놀이로 인한 두건의 큰 사건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쯤 봄이다. 봄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해서 약간은 쌀쌀한 날 하굣길이었다. 나는 쥐불놀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어른들이 밭두렁이나 논두렁 태우는 것을 보아왔고 당연한 줄 알았다. 그리고 항상 호주머니에 각 성냥은 몰래 갖고 다녔다. 어른들은 불장난하면 저녁에 오줌 싼다고 혼자서는 절대 불놀이를 못 하게 했다.


5km나 되는 하굣길은 고사리 같은 어린애들한테는 춥고 멀기 한 거리다. 추우면 친구들과 바람이 없는 산모퉁이에서 솔방울 몇 개 주어다가 마른 솔잎에 불 피워 꽁꽁 언 손과 발을 녹이곤 했다. 해수욕장을 지나 대항리 입구 언덕에 우리 조상 선산이 있었다. 어렸을 때 가끔 할아버지 생각하면서 놀던 놀이터다. 거긴 바다가 잘 보이는 양지바른 곳이다. 잘 자란 잔디가 보드랍고 말끔히 정리되어 돌멩이 하나 없는 우리에게는 딱 좋은 놀이터였다. 넘어지고 뒹굴고 말뚝박기 놀이하다 땅에 처박혀도 전혀 다치지 않는 곳이었다. 노는 것이 끝나고 음지에 덜 녹은 눈 때문에 옷은 범벅이 되곤 했다. 엄니한테 혼날 것이 두려워 불을 놓고 양말부터 말린다. 부드러운 잔디를 보니 잘 탈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돌아가셨다. 내 짧은 지식은 잔디는 불을 태워도 뿌리는 살아서 다음 해에 더 정갈한 싹이 튼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 생각도 하면서 잔디를 깨끗이 태우고 싶고 불놀이도 하고 싶었다


불을 붙여 깨끗이 태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산소이기 때문에 내가 주동이 되었다. 크게 번지지 못하도록 솔가지를 이용해 조절하듯 불을 꺼 가면서 재미있게 놀이를 하고 있는데 바다에서 갑자기 매서운 바람이 휘익~ 불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고조할아버지 묘까지 불이 올라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불은 계속 번져 대항리 밤나무골을 거처 당산 몰랭이 까지 번지고 있었다. 아이고~ 갱열이 살려. 상식이, 종회, 태금이, 모두 다 걸음아 나 살려라 내뺀다. 나는 다른 길로 도망쳐 집으로 왔다. 숨어서 당산을 보니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산은 불바다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방포(망웅개) 작은 골짜기에 해안포 208 전투 경찰 큰 부대가 있어서 몇백 명 부대원이 총동원해 산불 진압은 일단락 되었다.


변산 지서에서 사건 진상 조사가 들어왔다. 산불 진원지는 우리 최 씨 선산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대항리는 고조할아버지부터 살던 곳이라서 마을 사람 반은 최 씨였다. 한 집 건너 큰집이고 당숙 집이었다. 큰 당숙과 큰아버지 부안경찰서까지 가셔서 조회를 받았다. 아버지는 알고 계신다. 벌써 옷에서 불티 냄새가 나고 얼굴에 숯 껌둥이 붙어있는 걸 한눈에 알고 계신다. 호주머니를 뒤져 각 성냥까지 확인하시고 한숨만 쉬고 계신다. 나는 울면서 자수를 했다. 친구들 4명은 공범이지만 성냥 가진 내가 주범이다. 아버님 부안경찰서까지 가셔서 조회받고 미성년자가 불장난한 방화로 다행히 정읍재판소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방화범으로 감방 갈 수도 있었다. 까만 재로 변한 할아버지 봉분은 억새풀을 베어다 작두로 잘게 잘라서 표시 안 나도록 뿌려놨다.


봉분에는 절대 불을 지르지 않고 추석 전에 곱게 낫으로 벌초를 해야 하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왔다. 겨우내 움 추렸던 앙상한 가지에도 새싹이 트고 있다. 내 어린 경험 속 지식도 맞아떨어졌다. 선산에 작년보다 더 파란 잔디가 올라오고 있었다. 들판에는 유채꽃이 반발하고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뻐꾸기가 울고 있었다. 그러나 산불이 난 밤나무골은 소나무도 밤나무도 싹이 트지 않았다. 누렇게 변한 산을 보면서 산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죄책감도 들었지만 죄 없는 바닷바람을 탓하고 있었다. 바람만 불지 않았으면 충분히 우리끼리 진압할 수 있었고 큰 불은 막을 수 있었는데, 바람이 미웠다.


산불 사건 후 많이 조심했지만, 불놀이는 그치지 않았다. 산밑이나 바람 부는 날은 피우지 말아야 한다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산과 멀리 떨어진 밭두렁이나 논두렁에서 바람이 불어도 번지지 않는 안전한 곳을 택하여 불놀이는 계속되고 있었다. 겨울은 밤도 길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우리 아지트인 태금이네 세 마지기 밭두렁에 모였다. 그곳은 아늑한 곳이었고 산과는 멀리 떨어진 바닷가 언덕이었다. 그날도 각 성냥을 몰래 훔쳐 뒷문으로 살짝 빠져나왔다. 거기에 가면 서로 연락도 없었지만, 하나둘 다 모여든다. 깡통에 송곳니나 칼로 구멍을 송송 뚫은 다음 철사를 길게 늘어뜨려 돌릴 수 있게 만든 불놀이 도구도 미리 준비했다.


산에서 간 솔을 준비해 태우면 솔향기와 함께 활활 타오른다. 고무나무처럼 껍질에서 나오는 액체 송진이 흘러나와 소나무 가지와 단단하게 굳은 것을 간 솔이라 한다. 단단해서 일반 낫으로는 잘리지 않아 황새목 낫으로 힘 있게 내리쳐야 한다. 황새목 낫은 황새 목처럼 길고 쇠 주물로 단단하게 대장간에 두들긴 낫으로 자루만 나무로 되어있고 전부 무쇠로 된 낫이다.


어렵게 채취한 간 솔을 깡통에 넣고 몇 번을 빙빙 돌리다 어느 정도 원심력이 생기면 원반 던지듯 하늘 높이 던지면 밤하늘이 불꽃 대 잔치이다. 멀리 더 높이 던지는 친구가 그날 승자이다. 연습도 해야지만 불 깡통과 재료가 좋아야 한다. 얼마나 팔을 내둘렀는지 다음날 팔이 아프다. 검은손으로 훌쩍거리는 코를 닦았던지 코와 입 손등이 새까맣게 변했다. 저녁에 들어와 씻을 겨를도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울 엄니 노발대발하고 계신다. 겨우내 털실로 뜨개질하여 짜신 내 도꼬리 털옷 상의를 하루 저녁에 홀랑 꼬시려 버렸다. 고리땡, 나이롱(다고다) 바지나 잠바도 불놀이할 때는 불똥 하나만 튀어도 바로 빵구가 나버린다. 그것 입고 불놀이를 했으니 옷이 성할 일이 없다. 다음에는 방위받는 삼촌 군복을 입고 가야겠다고 작심했다. 


울 엄니한테 안 죽을 만큼 맞으면서 또 불놀이 노하우는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사진캡처 : 게티 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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