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 미첼 MJ Mitchell
“독수리 떴다 꼭꼭 숨어라~!” 독수리들이 게스퍼로우 Gaspereau 계곡 위에서 천천히 비행을 시작하면 나는 목소리를 높여 아이들에게 경고했다. 울프빌 언덕 위의 집에서 살 때의 일이다. 주변에 사는 많은 동물친구들이 내 집을 방문하곤 했는데 독수리는 그들에게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독수리도 먹고살아야 하는 절박함을 잘 알지만 내 친구들, 꿩과 다람쥐와 박새와 산비둘기 등을 독수리의 식사로 제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전, 우리 부부는 운이 좋게도 게스퍼로우 강 언덕 위에 있는 집을 소개받았다. 집안의 거실에 들어서면 넓은 통창으로 게스퍼로우 계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남편은 처음 거실 창 앞에 서자마자
“이 집이야! 내가 찾던 바로 그 집이 이 집이야!”
라고 외쳤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집을 계약했다.
울프빌 집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이웃과의 거리도 멀고 집 뒤의 찻길에는 지나다니는 차도 별로 없었다. 집 앞의 가파른 비탈에는 잡목이 무성한 숲이 언덕 아래까지 이어졌고 언덕 아래에는 커다란 옥수수 밭이 있었다. 그리고 옥수수밭 옆으로 게스퍼로우 강이 흘렀다. 집 뒤의 찻길 넘어 경사진 언덕은 포도밭이고, 집 옆으로는 키가 큰 호프가 자라고 있었다. 한여름 밤에는 반딧불이도 볼 수 있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내게 자연은 신나는 동물 천국이다. 발이 4개보다 많거나 발이 아예 없는 아이들은 감히 사랑한다고 말하기 무리가 있지만 아무튼 나는 거의 모든 동물을 좋아한다. 솔직히 같은 종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다른 종에 더 관심이 많다.
이사를 오고 보니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한동안 비어있던 집이라서 그런지 주변에 새들이 마음껏 둥지를 틀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온갖 종류의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공짜로 듣는 아름다운 소리에 보답이라도 하고 싶어서 나는 새 모이통을 만들어 달았다. 처음에는 하나였던 모이통이 점점 늘어나서 무려 7개나 되는 모이통에 매일 모이를 채워 넣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새 모이통을 채워 주는 일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 맘마 무러 온나~!”
아이들에게 식사시간을 알리고 집안에 들어와서 어떤 새들이 오는지 관찰하곤 했다.
몸집이 작은 참새나 박새가 제일 먼저 모이통으로 날아들었다. 검은 머리 박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새다. 까만 베레모를 쓰고 검은색과 흰색이 조화로운 앙증맞은 작은 몸으로 포르르 포르르 날아다니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지저귀는 소리도 리듬감 있고 귀여웠다.
한국에서 파랑 어치라고 부르는 블루 제이 Blue Jay 도 자주 모이통을 찾아왔다. 블루 제이는 등과 머리와 날개는 푸른색이고 배는 희다. 얼굴과 목과 꼬리에 검정 줄무늬와 흰 반점이 있다.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귈 때면 머리 위의 털을 세워 모히칸 헤어를 연출했다. 까마귀과의 블루 제이는 까마귀만큼 시끄럽고 수다스러웠다. 블루 제이라는 이름은 수다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영어로 모닝 도브 Mourning Dove라고 불리는 산비둘기도 자주 모이통을 찾아왔다. 산비둘기의 우는 소리는 왠지 구슬프고 애잔했다. Mourning이 ‘애도하다. 슬퍼하다’라는 뜻이니 번역하면 ‘애도하는 비둘기’이고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곡하는 비둘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비둘기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처량한 기분이 들면서 향수병이 밀려 오기도 했다.
검고 작은 몸집에 등에는 흰 반점이 있는 딱따구리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보통의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지만 딱따구리는 나무 기둥에 몸을 세로로 딱 붙이고 있어서 단번에 딱따구리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딱따구리는 나무에 붙은 채로 통통 튀어서 자리를 옮기는데 그 모습이 또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동글동글한 까만 몸통에 흰 반점이 있고 노란 부리를 가진 찌르레기와 로빈 Robin이라 불리는 노란 배를 가진 미국 지빠귀는 흔하고 흔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반기는 친구는 꿩이었다. 처음에는 모이통을 높게 매달아 놓았더니 몸집이 큰 꿩에게는 어중간한 높이였는지 모이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서 모이통 하나를 수풀 속 나무 둥치에 낮게 매달아 놓고 주변에 모이를 잔뜩 뿌려 놓았더니 이제는 꿩 가족이 제 집처럼 찾아와서 식사를 했다. 나는 꿩 가족의 우두머리인 멋진 장끼 (수컷 꿩)에게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하키 선수 '루 로롱고'의 이름을 따서 ‘루’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꿩이라는 이름은 꿩꿩하고 우는 소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루는 꿩답게 자주 목청을 세워 꿩~꿩~하고 짖었다. 울었다기보다 짖었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크고 사나운 소리였다.
루는 참으로 멋진 황금빛으로 빛나는 긴 꼬리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붉은 얼굴에 머리와 목은 청록색이고 목에는 하얀 띠를 둘렀다. 루는 가족 중 가장 먼저 모이통을 차지하고 식사를 했다. 루가 식사를 끝내면 그제야 다른 가족들이 식사를 시작했고 이때 루는 주변을 경계했다. 주위보다 높은 잡풀 더미 위에 올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따금 목을 길게 뽑고 날개를 펄럭이며 위엄 있게 소리쳤다. 꿩~꿩~!
해마다 초여름이면 루의 아내 까투리 (암컷 꿩)가 날개 속에 아기들을 잔뜩 숨기고 나타났다. 처음 까투리가 아기를 데리고 왔을 때 나는 새끼를 데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까투리의 뚱뚱하고 어색한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잠시 후 까투리의 날개 아래에서 ‘꺼병이’들이 하나둘 나왔다. 족히 6~7 마리는 되어 보였다. 닭의 새끼는 ‘병아리’라고 부르고 꿩의 새끼는 ‘꺼병이’라고 부른다. 완전 아기 꺼병이들은 엄마 까투리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작은 소리에도 놀라 후다닥 엄마의 날개 아래에 쏙 들어가 숨었다. 그러나 조금 몸집이 커지면 경계를 늦추고 모이 먹기에 바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영 어설프고 우스워 보였다. 비쩍 마른 털 빠진 닭 같았다. 엉성하거나 어리석고 둔한 사람을 ‘꺼벙하다’고 하는데, 꺼병이의 이런 볼품없는 모습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아빠가 아무리 멋지고 늠름한 장끼 '루'여도 꺼병이는 어쩔 수 없는 꺼병이인가 보았다.
카디날 Cardinal이라고 하는 새는 게임 ‘앵그리 버드’의 모델이다. 정확히 말하면 수컷 카디날이 게임의 주인공이다. 암컷 카디날은 그냥 평범하게 온몸이 갈색인데 반해, 수컷 카디날은 온몸이 빨갛다. 나는 분홍색이나 주홍색의 카디날을 몇 번 보았고 특이하게 아주아주 새빨간 털을 가진 카디날도 한번 본 적이 있다. 새 관찰용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면 카디날의 눈 주위의 검은 선이 영락없이 화가 잔뜩 난 앵그리 버드의 눈썹 같아 보였다. 꿩도 물론 예민해서 내가 집안에 숨은 뒤 한참 후에나 모이통 주위에 모이는데, 카디날은 꿩보다 10배는 더 예민했다. 그래서 관찰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온몸이 빨간 수컷 카디날은 희귀해서 내 주위의 친구들 중에서도 수컷 카디날을 직접 본 사람은 나 밖에 없을 정도로 귀한 몸이다. 게임 속에서는 화만 내는 새이지만 실제로 빨간 카디날을 본다면 그날은 행운의 날이 분명하다. 초록 나뭇잎 사이에 숨어 있는 새빨간 카디날은 꽃처럼 아름다웠다.
내가 매달아 놓은 새 모이통에는 새가 아닌 다람쥐들도 열심히 드나들었다. 그중에 유독 엉덩이가 주황색인 다람쥐가 있었는데, 나는 오렌지색 엉덩이라는 뜻으로 ‘오렌지 밤 Orange Bum’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오렌지 밤은 모이통에 고개를 처박고 입 안을 먹이로 잔뜩 채웠다. 한동안 오렌지색 엉덩이와 꼬리만 보이던 다람쥐가 몸을 돌려 모이통 입구로 나오려고 했는데, 아뿔싸! 욕심이 너무 과했다. 입안에 넣은 먹이가 너무 많아서 턱이 거의 땅에 끌릴 지경이 됐다. 빵빵하게 부푼 볼과 턱이 거의 제 몸집 만해졌다. 그는 입안에서 해바라기씨 몇 개를 뱉어내고 나서야 겨우 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오렌지 밤은 모이통을 매달아 놓은 나뭇가지가 닳도록 모이통을 자주 찾았다. 나는 오렌지 밤의 엉덩이에 토실토실 살이 붙는 것을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보곤 했다.
내가 매달아 놓은 새 모이통은 많은 새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기도 하지만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모이를 먹는 새나 다람쥐를 노리는 위험한 맹금류도 주위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강언덕 풀숲 어딘가에 독수리, 매, 부엉이, 올빼미 등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따금 하늘 위를 선회하며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를 보면 까마득히 높게 떠있어도 그 크기와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하늘의 제왕 맹금류 다웠다.
독수리들은 이따금 하늘에 떠서 바람을 탔다. 무슨 말이냐면, 바람이 높게 부는 날이면 독수리들이 하늘 위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멈추어 있었다. 마치 사람들이 바다에서 파도서핑을 하듯이, 독수리들은 하늘에서 바람을 타며 바람서핑을 즐겼다. 큰 독수리들은 마주 멋지게 바람을 탔지만 몸집이 작은 어린 독수리들이 바람 타기를 연습하는 모습은 어설퍼서 재미있었다. 공중에서 바람을 타는 기술은 독수리들에게도 연습이 필요한 고난도 기술인가 보았다. 어린 독수리들이 바람 속에서 비틀 거리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응원을 한곤 했다. 바람서핑을 연습하는 독수리들은 공중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정지를 시도하다가 바람의 힘에 밀려 균형을 잃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날개를 펄럭이며 상승해서 다시 바람 타기를 반복했다. 바람이 좋은 날에는 독수리들이 바람서핑을 하느라 몹시 분주했다.
기가 막힌 것은 이따금 독수리들 사이에 까마귀가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대여섯 마리의 어린 독수리들 틈에 까마귀 두어 마리가 함께 섞여 놀기도 했다. 까마귀들이 감히 독수리들과 함께 하늘의 제왕들의 놀이 ‘바람 타기’를 흉내 내고 있었다. 까만 몸 색깔을 빼면 독수리라고 착각할 정도로 몸집이 비대한 까마귀는 바람 타기를 훌륭하게 성공하기도 했다. 까마귀의 친화력과 독수리의 포용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화로운 게스퍼로우 계곡이었다.
여름에는 작고 예쁜 벌새 Hummingbir가 날아들었다. 설탕물을 담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으면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털을 가진 작은 벌새들이 와서 단물을 먹느라 바빴다. 짙은 청록색 혹은 보랏빛이 감도는 푸른색의 깃털은 햇살에 눈부시게 빛났다. 벌새의 날갯짓은 날개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아무리 봐도 새의 날갯짓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개를 젖고, 공중 부양하듯 떠서 재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모습은 마치 열대어가 바닷속을 헤엄치는 듯 보였다. 털 색깔도 열대어만큼 화려하고 고왔다.
내가 처음 ‘구름이’를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늑대인 줄 알았다. 그전까지 내가 본 코요테의 털은 갈색이나 흑갈색이었고 몸집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구름이는 달랐다. 내가 평소에 본 코요테보다 두세 배는 커 보였다. 그리고 아주 희고 빛나는 털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그가 늑대인 줄 알았고 ‘구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이웃에 사는 생태학자 M 씨가 노바스코샤에는 늑대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구름이는 다른 코요테보다 몸집이 컸고 희고 풍성한 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구름이가 우두머리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보름달이 게스퍼로우 계곡을 환히 비추는 밤이면 어디선가 코요테의 하울링 소리가 들렸다.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소리가 구름이 소리라고 믿었다. 구름이와 나는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함께 달을 보며 감탄했고 지구행성에 함께 살고 있다는 연대감을 느꼈다.
어느 밤, 외출 후에 늦은 귀가를 하고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자동차의 시동을 막 끄려는 순간 우리 집 현관 앞에 있는 낯선 무언가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스컹크였다. 까만 몸에 흰 줄이 선명했다.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듯한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스컹크의 고약한 냄새를 맡아본 사람이라면 스컹크의 성질을 돋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스컹크의 ‘방귀’라고 하는 것은 사실 기체가 아니라 액체로 분사된다고 한다. 분비액이 눈에 닿거나 분비액 묻은 손으로 눈을 비벼도 실명의 위험이 있다고 하니 절대로 가까이하면 안 되는 동물이다. 더구나 스컹크의 분비액은 물에 닿으면 냄새와 독성의 더 강해진다고 하니 물로 씻어 낼 수가 없어서 더욱 고약하다고 한다. 노바스코샤에서는 운전 중에 종종 로드킬 당한 스컹크를 지나칠 때가 있다. 그냥 스컹크의 사체를 스쳐 지나가기만 했는데도 차 안에서 반나절 동안은 고약한 냄새가 났다.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와 타이어가 타는 듯한 냄새와 거름이 썩는 냄새와 뭔지 모를 지독한 화학약품을 다 섞어 놓은 듯한 냄새였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다시는 맡고 싶지 않은 냄새였다. 우리 집 현관 앞에서 스컹크를 만난 그날 밤, 나는 차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스컹크가 자리를 피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따금 흰 꼬리 사슴이 우리 집 마당에서 풀을 뜯어먹기도 했다. 몸집이 말만큼 크고 건장한 수컷 사슴의 점프 실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 정도는 훌쩍 단 한 번의 점프로 뛰어 건넜고,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해서 껑충 뛰면 어느새 우리 집 마당에 도착했다. 주차되어 있는 우리 집 승용차도 한 번에 뛰어넘었다. 유난히 고운 분홍색 노을이 하늘을 물들인 어느 저녁 무렵, 사슴이 흰 꼬리를 흔들며 우리 집 정원의 풀을 뜯는 풍경을 보았다. 그 광경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나는 우리 집 마당을 지나는 붉은여우를 먼발치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너무 멀어 자세히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어느 날 밤, 여우가 우리 집 현관 앞을 지나치는 것을 보았다. 아주 천천히 걷는 여우의 풍성한 꼬리가 눈에 익었다.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우리 엄마가 자주 하던 여우 목도리를 꼭 닮았다. 중소형 개 만한 크기의 여우는 제 몸집만 한 풍성한 꼬리를 가졌고, 머리 위에 있는 삼각형의 크고 뾰족한 두 귀가 돋보였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사막 여우를 길들이고 싶어 했다. 사막 여우는 아니지만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여우를 보았을 때 나 역시 길들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입이 뾰족해서 약간 뾰로통해 보이는 귀엽고 우아한 여우였다.
나는 캐나다에서 아직 한 번도 야생 비버 beaver를 본 적이 없다. 비버는 캐나다의 상징이라서 수많은 비버 캐릭터가 캐나다 내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러나 야생에서 비버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아주 낮았다. 비버가 만들어 놓은 댐은 본 적이 있지만 댐 근처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비버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주 귀하신 몸이 분명했다. 언젠가는 꼭 만나보고 싶다.
나는 울프빌에서 사는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새 모이통을 채워 주었다. 내 집을 찾아주는 많은 동물 친구들 덕분에 초보 이민자인 나는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핼리팩스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이사를 해야만 했다. 울프빌을 떠나 이사하는 날 나는 모이통이 넘치도록 모이를 넣어 두고 왔다. 사냥을 즐긴다는 새로 이사 온 남자에게 나의 ‘루’ 만큼은 잡아먹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약속을 받아 냈지만, 루의 안전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 나는 도시 근처로 이사 온 후에 한동안 동물 친구들이 보고 싶어 몸살을 앓았다. 아직도 ‘맘마 무러 온나’하는 식사 알림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볼이 미어져라 입안에 먹이를 채워 넣던 오렌지 밤은 어떻게 지내는지, 구름이는 아직도 보름달을 보며 길고 멋들어진 하울링을 하는지, 독수리가 날면 모두들 꼭꼭 잘 숨어 있는지,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아직도 부엉이나 올빼미가 마실을 다니는지 모든 게 궁금했다. 야생 동물뿐 아니라 해와 달과 별과 구름과 무지개와 비와 눈과 바람과 천둥과 번개와 우박 등 게스퍼로우 계곡에서 만난 온갖 자연이 너무너무 그리웠다.
이민 초창기, 가장 외롭고 불안했던 시기에 울프빌의 자연은 나를 위로해 주었고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한국에서 살 때는 몰랐던 나의 취향, 자연친화적 삶을 좋아하는 나를 발견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살던 울프빌 집 주위, 강언덕에는 이제 새로운 집들이 많이 생겼다. 내가 살던 때와 같은 한적한 정취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웠고, 강언덕에 둥지를 틀었던 많은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모 사피엔스만큼 자연파괴적인 동물은 없는 것 같다. 나는 같은 호모 사피엔스로써 자연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자연에 큰 도움은 주지 못할 망정 자연을 헤치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리는 지구행성에 잠시 다녀갈 뿐이고 지구는 영원히 살아남아서 다양한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언젠가는 다시 시골 외딴집에서 살기를 꿈꾼다. 그때가 되면 더 많은 동물 친구들을 사귀어 봐야겠다. 생각만 해도 달콤한 꿈이 아닐 수 없다.
글-민재미첼 그림-조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