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 만에 퇴원을 허락받았다.

관해유도 항암치료의 끝

by 도로시의선물


문제는 항암치료 전 종기 제거 수술을 했던 왼쪽 골반 부위에 염증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주치의 교수님은 백혈구 수치가 오르면서 염증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하셨다.

염증이 자연스럽게 가라앉고 상처 부위가 잘 아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퇴원 전에 수술 부위를 다시 꿰매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느리고 더디지만 호중구 수치는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곧 퇴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필요한 물건들을 인터넷으로 하나씩 구매하기 시작했다.


아프기 전 함께 지내던 교회 사람들 몇 명과 같이 살던 집에서는 더 이상 생활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퇴원 후에는 전주 부모님 댁으로 내려가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퇴원을 한다면 당장 입고 나갈 옷이 없는 상황이었다.

살던 곳에서 내가 직접 짐을 챙겨 올 수도 없었고,

같이 살던 친구들에게 내 옷을 세탁해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주 본가에 몇 벌 있었던 옷들도 이전에 물난리가 나서 모두 버려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핑계 삼아, 그리고 아픈 걸 잠시라도 잊기 위해

가발, 모자, 운동화 등 퇴원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구매했다.


또한 틈틈이 먹방을 보면서

퇴원 후 먹고 싶은 음식들을 메모장에 적었다.

일명 먹킷 리스트를 작성했다.


치킨, 피자, 삼겹살, 짜장면 등 병원 문만 나서면 다 먹을 생각이었다.

나는 담당 교수님의 입에서 “퇴원”이라는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입원한 지 5주가 지났다.

여전히 백혈구 수치는 900, 호중구 수치는 160 정도였다.


이러다 40일 넘게 무균실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그날 아침 회진에서 주치의 교수님이 갑자기 말씀하셨다.


“예슬 씨, 어차피 혈소판 수치도 다 올랐고, 딱히 아픈 데도 없고,

호중구 수치도 느리긴 해도 조금씩 오르고 있으니까… 내일모레쯤 퇴원하죠?”


‘퇴원’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기쁘기도 했지만,

아직 호중구 수치가 낮은 상태라 바깥에서 생활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걱정보다 기쁨이 훨씬 더 컸다.

나는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입원한 지 5주 만에, 드디어 퇴원이 결정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퇴원 소식에 엄마와 아빠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해 “내부 세차까지 깨끗하게 해요”라고 당부했고,

청소업체에도 연락해 집 안 소독까지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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