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Good as It Gets
하루를 마칠 때면 허망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름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도,
삶이 쌓이는 게 아니라 흩어지는 듯한 느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특히 해가 지는 시간,
그때면 유독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다.
10년? 20년?
내가 기억하는 퇴근시간의 내 마음은 언제 그랬다.
얼마 전,
10년을 함께 일한 후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오랫동안 봐왔지만,
요즘 책임님은 어떤 아우라가 보여요.”
감동적이었다.
내 나이에 받을 수 있는 말 중에 이런 찬사가 또 있을까? 더군다나 한참 어린 후배가 해 준 말이라서 더 좋았다.
그리고 나도 느낀다.
내면부터 단단해지는 기분.
누가 뭐라고 해도 휩쓸리지 않을,
딱 잡힌 기준이 잡힌 듯한 기분.
사람들이 말하는 것,
그 너머의 무언가가 보이는 느낌이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모닝커피 한 잔과 함께 뉴스를 읽고
스크랩하면서 기록하는 시간이다.
경제나 부동산 정책 뉴스일 수도 있고,
소비자 트렌드 기사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요즘 소비자들이 다시
통돌이 세탁기로 돌아간다는 뉴스를 보면
나는 한참을 생각한다.
20년 전, 나 역시 드럼 세탁기에서
통돌이로 바꿨다,
그때 왜 그렇게 느꼈을까?
무엇이 나를 다시 통돌이로 가게 했을까?
요즘 소비자들은 왜?
이런 사소한 것들을 매일 관찰하고 기록한다.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세 시간.
뉴스를 스크랩하고 생각을 적다 보면
뇌가 점점 집중력을 되찾는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컨디션이 안 좋아도—
이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동굴이다.
주말이면 단골 카페에 앉아
스크랩한 글을 다시 읽고
노트에 끄적이며 브레인스토밍을 한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곁들이며
스트레칭하듯, 뇌를 풀어놓는 시간.
학생 때, 공부는 잘 못했지만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건 잘했다.
당장 집중이 안 돼도
엉덩이로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뇌가 공부를 받아들인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진득하게 앉아 있다 보면
막혔던 생각이 뚫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손이 움직인다.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생각하는 힘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걸으면서 생각한다지만,
나는 엉덩이로 버티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운다.
버퍼링이 걸리는 날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앉아서 생각의 방향을 붙잡으면
아이디어가 꼬리를 물고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
막힌 생각이 풀리고,
키워드를 노트에 적다 보면
생각이 입체화된다.
그 조각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을 수 있을 때,
나는 마치 기획안을 작성하듯
손글씨로 단어 하나하나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보면 문장이 되고, 글이 된다.
글쓰기도 결국 루틴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호흡.
단어 몇 개를 흘려 적다 보면
어제의 생각이 오늘의 문장으로 쌓인다.
AI 활용하기
나는 AI에게 원고를 보여주기도 한다.
논리에 모순은 없는지,
빠진 연결고리는 없는지 크로스 체크 해주는 대상이 있어서 정말 좋다. 특히 AI는 감정이 없다는 게 인간의 따라가지 못할 장점이다.
아무리 수정을 요구해도 지치거나, 기분이 상하거나 지겨워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내가 수정을 하다가 먼저 지칠 정도.
단점도 있다.
처음엔 얘가 천재인 줄 알고
하는 말을 다 믿었다.
수정하라면 고쳐 쓰고,
매끈하게 다듬으라면 다듬었다.
그런데 글이 너무 평범해졌다.
내 보이스와 감정이 사라졌다.
누구나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 정보나 평이한 관점의 나열은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AI에게 요구했다.
내 표현이 거칠어도 그대로 두라고.
호흡이 가빠도 고치지 말라고.
중복되는 표현이나 논리 모순,
단락 나누기 중심으로 의견을 달라고 했다.
나머지는 오롯이
나의 글맛을 남기고 싶었다.
실제로 그런 글이 라이크 수에서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그 루틴의 힘으로
나는 100일 동안 100편의 브런치 글을 발행할 수 있었다. 단 하루도 어기지 않고 매일매일.
그 글들은 그대로
나의 퇴직을 위한 디자인이 되었고,
이제는 실행을 위한 매뉴얼을 쓰고 있다.
이전 연재는 퇴직이라는 큰 주제를 놓고
생각이 흐르는 대로 썼다.
이번 매뉴얼은 목차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발행을 하루 이틀 연기한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100편의 연재를 마치자마자 다음 연재를 시작하면서 왜 또 사서 고생을 시작하나?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누가 읽든 읽지 않든,
내 생각을 활자로 풀어내는 시간은
정말, 정말 달콤하다.
연재를 마치고 나서야
어떤 분들이 라이크를 눌러주셨는지 살펴봤다. 초반에는 라이크를 아예 보지 않았다. 반응이 너무 없으면 기가 죽어서 연재를 이어가지 못할 거 같았다.
중간부터 힐끔힐끔 라이크를 남겨주는 아이디를 보았다. 그런데 시작부터 끝까지 꾸준히 함께해 준 아이디가 보이면 기분이 좋았다.
묘한 기분이었다.
“이분들은 왜 내 글을 계속 읽을까?
무엇을 즐기는 걸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독자’라는 존재가
불현듯 다가왔다.
어릴 적 친구를
성인이 되어서 우연히 만난 듯한 기분.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내 글에서 작은 동기부여나 힌트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분들이 떠자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댓글은—
100편의 글 가운데 단 하나도 없었다.
하나도!
원래 그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