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과 세금 그리고 죽음
남에게 기대하지 않기
남이 나에게 이로운 일을 해줄 거라는 기대가 없다.
나도 나를 위해 이로운 일을 잘 못하는데, 운동이나 금연, 금주조차도 못 지키는데, 남이 날 위해 무슨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주겠나.
닥터 함익병의 말이다.
아주 깊게 공감했고, 나의 매뉴얼로 삼았다.
열등감
타인에게 기대하고, 서운해하고.
특히 나이 들면 “나를 무시하나?” 하는 생각이 강해진다.
상대적으로 내가 약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열등감은 참으로 고약하다.
나를 갉아먹고, 타인에게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나는 열등감을 느끼면서 수치스러워하기보다는, 나의 열등한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을 택했다.
내가 얼마나 산수를 못하는지,
얼마나 자주 방향감각이 고장 나는지,
기계를 얼마나 잘 고장 나게 하는지 등등.
숫자 울렁증
나는 그냥 산수를 못하는 게 아니라, 숫자 울렁증이 있다. 0이 많은 숫자만 봐도 호흡이 곤란해진다.
정말 이게 뭐지?
하는 심정이다.
100만 원을 송금해야 하는데, 1천만 원을 송금한 적도 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어릴 때 내가 산수를 너무 못하니까,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혼을 냈다.
그건 엄마의 절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직까지 숫자를 보면 힘들다 — 이것이 나의 산수 트라우마에 따른 정신분석학적 주장.
사실은 선천적으로 좌뇌가 조금 모자라게 태어난 것 같기도 하다. 남들은 수월하게 하는데 나는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느긋한 마음
그래도, 나를 질책하는 대신
“사람이 다 잘할 수는 없지”라고 느긋한 마음을 선택했다.
좀 부끄러움을 참을 줄도 알게 되었다.
나를 질책한다고 더 좋아지는 건 없더라.
관계의 조건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수용과 사랑을 구하는 건 비정상이다.
나도 나를 무조건 수용할 수 없는데,
똥기저귀 차고 다니는 시절이 지나면 세상의 모든 관계는 조건부다.
그 너머의 것을 바라는 건 너무 철이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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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도 괜찮다
핑계를 찾기보다는 솔루션을 찾는다.
“나는 외출하려고 해도 만날 사람이 없어.”
보다는
“혼자 산책 삼아 외출한다.”
누구와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되고, 메뉴를 조율하지 않아도 되고, 혼자 조용히 음식을 음미하는 식사.
그것도 괜찮다.
생일도 내 몫
누가 내 생일 좀 챙겨주려나? 하지 않는다.
나도 가끔 내가 왜 태어났나 싶은데, 누가 내 생일을 챙기길 바라지 말고 나 스스로 챙기자.
이것도 닥터 함익병의 말인데,
나이 들어서 생일이 뭐 따로 있나.
아침에 눈 떠서 건강하게 움직이면 그게 생일날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매일매일 생일처럼 내가 나를 챙기면 되지.
뭐 날을 따로 정해놓나.
누가 축하한다고 더 살맛이 나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살아야 할 의미가 있다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죽으면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
나도 아무에게도 기억되고 싶지 않다.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관계의 취향
인간관계는 서로 필요가 맞을 때 지속된다.
취향이나 식성이 비슷해서 만날수록 할 얘기가 많아지고,
서로의 관심사에 자극과 정보를 주는 관계.
그런 관계를 나는 좋아한다.
반대로, 만날 때마다
내가 얼마나 불행한가,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가,
얼마나 아픈가를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둔다.
20년쯤 들었으면 충분히 했다.
아픔의 방식
나도 남에게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일절 하지 않는다.
아프면 혼자 조용히 병원 가고 약 먹는다.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럽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아파 죽겠는데 옆에서 얼쩡거리는 사람이 있는 게 더 힘들다.
내가 기어서 화장실을 가든, 물을 마시든.
아플 때는 더욱 혼자이고 싶다.
자연의 법칙
동물들도 그렇다.
아프거나 몸이 이상할 때는
그렇게 좋아하던 주인 곁을 떠나
혼자 시간을 갖고 나오거나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그게 더 자연에 가까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자연은 감정이 없다.
무시무시한 일도 저절로 벌어지고
죽음은 일상이다.
관계 매뉴얼
남이 나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기를 바라는 대신,
내가 나에게 얼마나 다정하고 친절한지를 생각한다.
세상의 듣기 좋은 말에 숨은 함정을 생각한다.
“연대하고 소통하자” 보다는
“각자 살아가고, 예의를 지키자.”
그게 나의 관계 매뉴얼이다.
세상에 나눌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면,
통증과 세금, 그리고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