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 but Better.
언제부터 죽음을 생각해야 할까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유년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이 모든 것이 결국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일찍부터 인생의 유한성을 환기시켜 주었다. 세상을 떠나는 동물들의 죽음은 그 감각을 더욱더 또렷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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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터부인가 아니면 해방인가
죽음을 터부시 하는 문화가 있다.
마치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오직 ‘삶’에만 집중하는 태도가 더 안전한 선택처럼 보인다.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나는 내 존재의 유한성을 떠올릴 때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유한하기 때문에 생이 더 소중해지고, 쫄깃해진다.
모든 것이 영원하다면 과연 그 가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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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 라이프 리밸런싱
‘죽음 준비’가 너무 무겁고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정기적인 라이프 리밸런싱이다. 나는 정기적으로 내 인생을 한 번씩 털어본다.
계좌별 투자 수익 점검은 기본, 옷장을 뒤집어 버릴 것과 나눌 것을 구분한다.
꽉 찬 서랍을 모두 비우고, 책장과 신발장도 같은 방식으로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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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납가구 늘리지 않기
물건이 늘어나면 수납가구를 사는 대신, 물건 수를 줄인다.
넓은 공간에 대한 로망은 있지만, 그곳은 허브향과 햇살로 채우고 싶다.
뜬금없이 물욕이 솟구칠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 죽으면 이건 누구한테?”
이 질문 덕분에 싼 물건을 막 사지 않게 된다.
제 값을 하는 물건을 신중하게 산다. 싸다고 신나게 샀다간 금방 질리고, 나눔 하기도 애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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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도 미니멀리즘
관계는 물건만큼이나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항상 사람이 득실득실해야 행복한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사람을 상대하면 에너지가 쭉 빠진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스몰토크조차 버겁다. 소셜 니즈도 낮다.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하루에 최소 2시간은 필요하다.
나는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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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성의 의미
죽음에 대한 생각은 슬프거나 공포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는 삶을 다시 선명하게 하는 리마인더다.
정기적으로 내 삶을 점검하고, 물건과 관계를 정리하며,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묻는 일 —
그것이 곧 나만의 죽음 준비이자, 삶을 더 촘촘하게 누리는 방법이다.
유한함이라는 조건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게 된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하고 양보하는 자세,
어차피 다 가질 수 없다는 걸 수용할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고.
입에 먹을 것을 잔뜩 물고도 양손에 음식을 꽉 쥔 어린아이의 마음.
어린아이는 귀엽기라도 하지, 다 큰 어른이 이러면… 조금 피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