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위해 책으로 써주마
준비 없이 맞이한 퇴직
앞만 보고 달리던 말이 전복되듯,
퇴직은 한 개인의 삶을 단숨에 뒤집는다.
나는 그런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아끼는 후배에게서, 존경하던 선배에게서.
1. 40대의 이직, 미션 임파서블
20년 근속 끝에 해고된 후배가 있었다.
정체성은 흔들렸고, 통장은 빠르게 비워졌다.
낮시간에 친구와 만나는 것도 어색했고,
여전히 조직의 리더였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1년 후 다시 만난 그의 얼굴에는
불안과 피로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생활비는 빠듯해지고,
아이의 성장과 함께 지출은 더 늘었다.
집안에는 냉랭한 침묵만 흘렀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1년 동안 번 돈은 고작 80만 원.
그는 말했다.
“내가 이 정도로 충성하면 회사가 알아줄 거라 믿은 게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2. 충성의 끝, 희망퇴직
또 다른 선배는 40대 후반에 희망퇴직을 했다.
가족에게조차 사실을 알리지 않고,
3년 동안 매일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그가 향한 곳은 사무실이 아니었다.
도서관, 공원, 카페 구석이었다.
200통이 넘는 이력서를 보냈지만,
단 한 번의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50대.
그에게 어떤 선택지가 남아 있을까.
3. 꿈과 열정의 끝, 빈곤
50대 초반, 새로운 커리어를 꿈꾸며
이민을 떠난 선배도 있었다.
“아직 젊다”는 자신감을 안고
외국에서 다시 시작했지만,
10년 만에 빈손으로 귀국했다.
그의 얼굴에는 정열 대신
빈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운터를 비켜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이 아팠다.
언제나 후배들에게 풍성하게 베풀던 선배였다.
받는 것보다 주는 걸 즐기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커피 값조차 망설이고 있었다.
선배의 퇴직은 안녕한가요?
후배들이 종종 내게 퇴직 준비를 묻는다.
나는 유머러스하게 말한다.
“올셋(All set)!”
내가 너희들에게 힘들다, 두렵다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니.
니들 마음 편하라고 내가 만든 컨셉이다.
담담하고 당당하게 퇴직을 맞이하는 선배로
기억되고 싶다.
퇴직금 제도나 IRP 이야기를 꺼내면
후배들은 금세 지루해한다.
그러나 퇴직 후 여행 얘기를 꺼내면
눈빛이 반짝인다.
아직 퇴직의 실체를
실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속으로 다짐한다.
“너희를 위해 책을 써주마.”
나의 퇴직 디자인은
언제든 구현될 수 있도록 다듬어지고 있다.
소속감이 사라져도
외로움 대신 자유를,
무기력 대신 단단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