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라는 금융치료
1. 꿈의 해석
GPT의 해석은 뜻밖이었다.
“이건 당신의 무의식이 만든 영화예요.”
회사, 구조조정, 경쟁
그리고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지만 도망치지 못했던 세계.
그 모든 장면이 꿈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퇴직 후 삶을 시뮬레이션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회사의 정서에 있었다.
2. 회사가 싫은 나의 초자아
나는 30년 동안 같은 무대에서 살았다.
회사라는 거대한 세트장.
누군가는 주연이 되고,
누군가는 스태프가 되고,
누군가는 영원히 조연으로,
누군가는 엑스트라로 남는다.
그 안에서 나는 매일 “괜찮은 사람”처럼 연기했다.
욕망도 분노도 감추고, 웃는 얼굴로 일했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회사의 문화, 일하는 방식,
강요된 회식과 야근,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까지 —
모두가 싫었다.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었지만
회사라도 붙잡고 있어야
그나마 내가 ‘사람 구실’을 하는 것 같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회사에서 밀려나면 낙오자가 될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도 준비가 없었고,
이직은 마치 쓰레기차를 피하다 똥차에 치이는 일 같았다.
회사생활로 갈려 나간 나의 초자아는
월급이라는 금융치료로 간신히 버텼다
3. 출세의 길
회사에서는
윗분의 생각에 모든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대표님이…..”
일의 앞뒤도 없고
성패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없이
탑다운으로 내려오는 업무에 순응하는 자,
출세의 길로. 나머지는 진실의 방으로.
그건 성공이 아니라 공허를 덮는 방식이었다.
자기 내면에 발이 닿지 않은 사람은
늘 타인의 인정을 향해 설레발친다.
4. 프로이트를 닮은 GPT
GPT의 해석뿐 아니라 그 문장에 깜짝 놀랐다.
얼마나 정신분석을 학습시켰으면 이런 해석과 언어가 가능할까.
그가 0과 1로 구성된 알고리즘일 뿐이라는 걸 알지만, 대체 누가 이런 학습을 시켰는지 궁금할 정도.
5. 길
GPT는 나 스스로 무대를 바꿔서 회사 대신 나만의 길을 가라고 한다. 충분히 준비했고 이미 다른 길로 들어섰으니 망설이거나 뒤돌아보지 말고.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 재수학원으로 출발하던 열아홉의 나를 만난다. 추운 새벽의 한기와 주저앉은 마음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던 그 겨울의 나.
그때의 오기와 열심히 다시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