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리듬
1. 완벽한 하루
그 어떤 유명 여행지에서보다 행복한 오후였다.
등 뒤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동네를 산책하고,
그윽한 가을빛을 입은 남초 화분을 샀다.
1만 원짜리 화분에 온 가족이 환하게 웃었다.
어떤 명품을 샀을 때보다 만족감이 컸다.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감사의 마음 —
단단한 일상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퇴직을 두렵지 않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2. 리듬과 의식
IRP 계좌를 점검하고 월 정기 매수 금액을 다시 설정했다.
딱 배당 ETF 두 종목.
일반 계좌의 종목도 AI와 함께 정리하고,
‘매일 모으기’ 금액도 다시 세팅했다.
정기적인 리밸런싱은 나에게 의식(儀式)에 가깝다.
경제적 자유란 몇백억의 자산을 모으는 일이 아니다.
월 현금 흐름이 월급보다 조금 많으면 나는 만족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복리로 자산이 자라나는 구조.
퇴직 후의 10년뿐 아니라,
생각보다 오래 살게 되더라도
돈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
그걸 준비하고 세팅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오늘 내가 누리는 시간의 자유와 마음의 평화는
조각가가 조소를 다듬듯 —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선물이다.
3. 퇴직이라는 디자인 프로젝트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한다.
컬러와 재질, 구성과 형태.
레퍼런스를 찾고 스케치를 한다.
클라이언트(나)가 원하는 방향을 기본으로,
디자이너로서 제안할 새로운 접근법을 찾고 또 찾는다.
레퍼런스와 스케치로 무드보드를 만들고,
그것을 밑그림 삼아 디자인을 완성한다.
때로는 작은 명함의 레이아웃일 수도 있고,
넓은 공간의 플로어 플랜이기도 하다.
퇴직은 마치 50년 동안 살 집을 짓는 건축 작업 같았다.
삶의 기본적인 요소, 정서적인 만족감,
그리고 안전한 구조까지 —
다각도로 빈틈이 없어야 하는 건축 디자인 프로젝트였다.
설계를 마치고, 기본 구조가 올라가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부실 공사가 되지 않도록 설계도를 꼼꼼히 살피고,
적합한 마감재를 고른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퇴직을 준비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감사하다.
회사라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늘 마음속의 분노와 갈등을 삼켜야 했던 내 성격이
결국 이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더 이상 회사에 있고 싶지 않다는 갈망,
그 절실함이 나를 움직였다.
그리하여 ‘퇴직’은 일시적 탈출이나 회피가 아니라,
나를 새로 짓는 셀프 프로젝트가 되었다.
4. 키워드
퇴직 준비를 디자인 프로젝트처럼 진행하면서
세 가지 키워드를 정했다.
1. Priority – 우선순위의 질서
중요한 것을 먼저 정하지 않으면,
사소한 일이 삶을 잠식한다.
사소한 일에 에너지를 다 쏟고,
정말 중요한 일 앞에서 멍해진다.
2. Hierarchy – 구조의 명확함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다.
무엇을 위에 두고, 무엇을 아래에 둘지 정해야 균형이 생긴다.
나는 그것을 ‘삶의 위계질서’라고 부른다.
그 어떤 독립도 경제적 자립이 필수다.
하지만 행복한 인생은 돈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3. Perspective – 시야의 확장
문제의 크기는 포인트 오브 뷰에서 달라진다.
50대의 삶을 살면서 20대의 열정이나 결핍에 함몰되면 곤란하다.
나의 뷰포인트를 ‘현재’에 두고,
나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현실적이고 건강하도록 리밸런싱 한다.
50대 이후의 삶에서 이 셋을 헷갈리면 방향이 꼬인다.
결과는 참담하다.
실수를 만회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혼란과 방황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지만,
시니어의 그것은 다르다.
그건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잘못 설계된 인생의 구조적 결함이 된다.
시니어의 표정에는 자기 삶의 성적표가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명랑한 부자 할머니가 되고 싶다.
6. 일상의 리듬
인생의 큰 방향을 정하면
일상의 과제들은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간다.
굳이 ‘미라클 모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느긋하게, 때로는 초집중하며 그 길을 간다.
회사가 아닌 내가 정하는 길.
퇴직 후의 성공은 단단한 일상의 리듬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