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192. 벌써, 크리스마스 캐럴이

스타벅스에서

by Mira


노랗고 붉은 가을 나무가 보이는 창가에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거북이처럼 노트북 화면으로 기어 들어가는 사람들,

미간을 찌푸린 채 문제집을 푸는 학생,

영어 스피킹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커피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기와 열기가 카페 공간에 가득하다.

흔한 스타벅스의 풍경이다.


집에서 걸어서 2분.

이곳은 나의 작업실이자 사무실이다.

원고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통화 소리.

“회사 나오면 개털이야.

오랜만에 이력서 쓰려니까 죽겠어. 아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이력서를 써야 하는 마음.

그 마음을 나는 잘 안다.


2000년대 초, 닷컴의 열기로 세상이 뜨겁던 시절.

화려한 스카우트로 들어간 벤처회사는

1년도 안 돼 쫄망했다.


대기업 출신 동료들은 서둘러 돌아갔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의 이력서를 봐주며

채용 공고를 공유했다.


닷컴 버블이 꺼지고, 벤처들은 공중분해되었다.

그때 나는 서른 살이었다.


이력서를 쓰는 일이 힘들다는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벌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었다.

매일 낭떠러지 끝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기분이었다.


반지하 월세방에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밤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마중 나오던 아이들.

지금은 모두 별이 되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산책을 허락했고,

놀 만큼 놀고 나면 꼭 집으로 돌아와

긴 밤을 함께 보냈다.


사료는 제일 싼 걸로 샀지만

양은 넉넉히 주었다.

모두 길고양이였지만,

어쩌다 인연이 되어 서로를 사랑했다.


아직도 아이들의 성격을 기억한다.

가장 나를 거부하던 고양이, 비비.

고등어 무늬의, 당당하고 성깔 있는 수컷이었다.

내 덕분에 땅콩은 잃었지만.


어느 날 비비가 입에 무언가를 물고 창문을 넘어왔다.

멀리서 본 나는 하얀 비닐봉지인 줄 알았다.

바람에 흔들리듯 나불나불거렸으니까.


그건 하얀 비둘기였다.


비비는 고맙다는 말 대신,

‘오다 주웠다’는 컨셉으로 비둘기를 내어 주었다.


정신이 혼미한 비둘기를 살살 달래

밖으로 내보내자,

비비는 아주 괘씸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며칠 동안 그 녀석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가득한 스타벅스에서

그때의 겨울을 떠올린다.


춥고 습한 반지하에서

넷이 꽁꽁 껴안고 자던 한겨울의 공기.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던 그 방은

마치 길바닥 위에 누운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따뜻했다.


사람들의 대화소리도 이제는

화이트 노이즈처럼 들릴 뿐이다.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문득, 이런 공간이 있어서 고맙다.


솔직히 말해,

커피 맛은 베리 굿이라고 할 수 없지만

나중에 내 책이 나온다면,

표지에 이렇게 쓰고 싶다.

Thank you, Starbu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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