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13. 친절의 객단가

죄송합니다의 기억

by Mira


1. 죄송합니다


나는 백화점 운동화 매장, 로드샵 화장품, 빵집에서

최저 시급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다.


5분 교육받고 포스 앞에 섰을 때,

나는 하루 종일 ‘죄송합니다’를 달고 살았다.


포스 결제도 서툰데

1만 원을 두 장의 카드로 나눠 달라는 손님,

현금과 카드를 섞어서 결제해 달라는 손님이 오면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

뒤에 길게 선 사람들의 눈동자는

하나같이 위로 솟아 있었다.


그 시선을 견디는 일이

한 시간보다 길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손님들이 자기보다 ‘상대적으로 열위’라고 생각하는 매장 직원에게

얼마나 쌀쌀맞고, 얼마나 조급한지 나는 너무 잘 안다.

직원을 하나의 계산 기계로 여기는지,

조금의 머뭇거림도 참지 못하는 얼굴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2. 존중과 배려의 방식으로


유통사 경험이 많은 딱 보면 보인다.

“누가 오늘 ‘첫 요일’인지,

누가 ‘오늘 버티기 모드“


나의 행동지침

매장에서 만나는 직원들에게 상냥할 것.

재촉하지 않을 것.

그리고 그들의 일을 덜 피곤하게 만들어줄 것.


특히 아르바이트생처럼 보이는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면

2~3만 원 정도 하는 물건은 그냥 산다.

소모품이라면 한 개쯤 더 사도 괜찮다.

그들에게는 오늘 하루의 자신감을 이어주는

작은 성과가 될 수 있으니까.




3. 따뜻한 순간들


딱 봐도 첫 출근처럼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진땀을 흘리며 옷을 설명하던 날이 있었다.

내 취향과 맞는 옷이 없어 나도 한참을 같이 고민했다.

결국 화이트 기본 티셔츠 하나를 계산했다.


그 티셔츠의 기억은 이미 흐릿하다.

하지만 계산대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환한 표정은 오래 남았다.

아마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않겠지만

나는 잠시 타인을 위해 작은 수고를 했던

그 마음가짐을 기억한다.


또 다른 날,

쇼핑몰을 걷다가 새로 론칭한 화장품이라며

한 번만 테스트해 보라고 다가오는 직원이 있었다.

처음 듣는 브랜드라 관심도 없었고

집에 화장품 재고도 많았지만

그녀의 태도가 마음을 움직였다.


카드 결제도 서툴고

포장도 느렸지만

그 어색한 손길에 번지던 미소가 참 좋았다.

그래서 세럼 하나, 썬크림 하나를 샀다.


내 눈에는, 아마도 매장 경험이 거의 없는

사무직 직원이 프로모션 기간 동안

잠시 현장에 파견된 듯 보였다.


함께 있던 엄마가 의아해하셔서 말했다.

“이건 낭비 아니야?”


나는 웃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제 방식의 기부예요.”




4. 여유 있는 마음으로


기부라는 단어는 조금 큰 느낌이지만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내 방식대로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법이다.


타인을 돕는 방식은 꼭 돈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대의 역할을 존중하고,

서툰 부분이 있어도 모른 척 넘어가는 것.

그들에게 잠깐의 여유와 안전한 공기를 건네는 일.


나는 거기에 약간의 응원을 더할 뿐이다.

“더울 텐데 고생이 많네요.”

“덕분에 좋은 제품 샀어요.”

이런 한마디가

하루 종일 서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에너지가 되는지 안다.


반대로, 매장에서 손님을 상대하다 보면

아무 맥락 없이 반말부터 꽂아 넣는 어른들의 얼굴도 기억난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나이 들어가면

주름도 예쁘게 생기고

피부에도 좋다.




5. 나에게 돌아오는 것


나는 누구보다 실익을 잘 따지는 성격이다.

하지만 남에게 조금은 돕는 마음으로,

약간 손해를 보았다 해도

너무 분해하지 않는 태도로 살고 싶다.


살아보니,

끝까지 움켜쥐고 있어야 지켜지는 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흘려보내도 괜찮은 것들이 있었고,

그 작은 여유가 나를 더 편안하게 만들 때가 많았다.


그리고 결국 내 안에 남는 것은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던

그때의 내 모습이다.


물론,

현금흐름 관리는 절대로 놓치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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