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인생의 디폴트값
혼자 잘 노는 아이
어릴 때 나는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하루 종일 혼자서도 잘 놀았다.
공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림 그리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반복적인 일을 싫어하고
주기적으로 새로운 감각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20대에도 친구들과 어울려
화려한 클럽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에 돌아오면
꼭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온전한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했다.
역사책을 통해 멀고 먼 시대를
경험하는 걸 좋아했다.
내면의 자아가 확장되는 에너지를
책과 여행을 통해 얻었다.
이야기 속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면서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주인공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그를 나의 세계로 초대해서
대화를 나눈다.
불쑥 찾아온, 불청객 같은 외로움
언제부터인가 혼자 있는 시간이
불편하고 지루했다.
항상 호기심을 갖고
흥미 있는 주제에 파고드는 성격이었는데.
눈 감고 상상만 해도
한 나절이 금방 지나갔는데.
이제는
눈을 감으면
불안이 짓누르는 감정과
파국으로 치닿는 미래만 떠올랐다.
누군가 나를 공격할 거 같고
지금까지 살아온 노력을 비웃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들킬 것만 같았다.
인생의 디폴트값은 외로움
사람들도 만나고
내 안의 지루함을 씻어줄
여행을 다녀도
외로움은
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애먼 사람 만나고 돌아다니다가
헛돈만 쓰고
통장은 빵꾸나고
내 마음도 뻥 뚫리고
허한 마음 달랜다고
금융치료 했다가
당근으로도 팔리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이 한가득.
외로움에
가난까지 더해지는
불상사를 겪어 보니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
이제는 내면 깊은 곳에서
혼자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차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