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을 에르메스로
옷장을 정리하다가
먼지가 뽀얗게 앉은 샤넬 박스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한 묶음의 사진을 발견했다.
종이 냄새가 가벼운 먼지처럼 일었다.
이 박스는 원래 지갑을 담던 상자였는데,
정작 오래 남은 건 지갑이 아니라
그 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둔 나의 시간들이었다.
무려 30~40년 전의 기록들이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간 경주의 나.
빨간 페도라에 청바지, 카멜색 랜드로버를 신었다.
(랜드로버: 지금의 닥터마틴 같은 스타일의 슈즈 브랜드)
중학교 1학년,
소풍 때 친구들과 나무 위에서 장난치던 개구쟁이.
빨간 캡을 쓰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직 입시의 고난이 시작되기 전의 표정이다.
다시는 지을 수 없는 웃음기.
재수 시절의 그늘진 얼굴.
분신처럼 아끼던 강아지와 찍힌 사진은 아련하다.
잔디밭 너머로 보이는 잠실 주공 5단지.
88 올림픽 마지막 날의 서울 풍경.
그때 살던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공원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기 관람을 마친 외국인들과 웃고 떠들며,
We are the world
를 불렀다.
고3 때 소풍 사진.
블루 체크 캡과 아이스진 패턴의 청바지가 강렬하다.
유행이 돌고 돌아 다시 아이스진이 유행해도 나는 다시는 입지 않을 듯.
충분히 즐겼다.
대학에 갓 입학했던 그 봄.
대학교에 가서 가장 먼저 산 건
레이벤 그린 선글라스였다.
버뮤다팬츠에 카키색 민소매를 입고
헬렌 카민스키 모자를 쓰고
아기자기한 샵과 화랑이 많은 골목에서 웃고 있다.
가로수길이다.
미국 어학연수 시절.
함께 지냈던 친구들과 어깨동무.
브라운대 캠퍼스에서
로고가 박힌 스웻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
짧은 기간이었지만 괜히 ‘모교’ 같은 친근함이 든다.
정말 아무 걱정도 생각도 없는 스무 살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잭슨 폴록의 그림들.
그리고 대학 졸업식.
사진들 사이에 ‘캔디 스티커’까지 섞여 있었다.
아마 친구들과 교환했던 작은 기쁨의 흔적.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캔디의 리즈 시절.
다시 박스에 넣으려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0년 전에 선물 받았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한 번도 펼치지 못한 에르메스 다이어리.
그 다이어리는 한동안
‘멋진 커리어 우먼의 일정’을 적어야만 폼이 난다고 믿게 했다.
사장단 회의,
굉장한 사업적 결정을 한 고뇌의 흔적,
성장하는 커리어,
멋진 문구들.
그런 것들을 적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이제 와 보니,
그 비어 있던 페이지들이야말로
그 시절의 나였다.
공허와 허망함 속에서 번아웃을 겪던 나.
그 다이어리에 사진과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풀 냄새가 살짝 배어 나오면서
내 인생의 10~20대가 조용히 펼쳐졌다.
지금 보니 꽤 예쁜 아가씨였다.
이제야
에르메스 다이어리도 제 값을 한다.
저절로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너무 많이 되풀이해 너덜너덜해진 후회들.
마치 곧 끝나는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기억은 단순한 ‘장면’이 아니다.
언제나 지금의 해석이 따라온다.
현재가 고달프면
과거의 상처는 더 깊어진다.
현재가 충만하면
그 시절의 고생도 ‘다 지나간 일’이 된다.
스무 살 때 실패한 연애.
내가 지쳐 있던 시절엔
‘나의 결함’처럼 느껴졌다.
나를 질책하고 다그치는 목소리만 가득했다.
요즘 같은 날엔
‘그 나이라서 가능한 소심함’ 정도로 보인다.
살아보니, 인생은 생각보다 별거 없다.
좀 더 대담할걸!
과거는 늘
현재의 해석으로 편집된다.
자꾸 발목을 잡는 기억이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보다
지금의 나부터 살펴본다.
그때 그 일이
왜 여전히 나에게 영향을 주는지—
답은 과거가 아니라
늘 지금의 나에게 있다.
언제나
지금 편안해야 한다.
이제, 나중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