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그곳에 없다
1. 스크린 속의 X
꿈에서 전 남자친구가 영화 속 인물로 나왔다.
그의 역할은 ‘새끼 포주’였다.
여자를 때리고, 죽이고, 다시 때렸다.
황해의 잔혹한 장면처럼,
숨 막히는 폭력이 반복되었다.
추적자의 하정우처럼 그는 천연덕스러웠다.
나는 객석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꿈속의 시간은
내가 그를 만나기 훨씬 이전의 모습이었다.
“영화에 출연했었다고?”
그리고 장면이 넘어가자
그의 ‘선배’ 포주로 고 이선균이 등장했다.
담배를 물고 X에게 일을 가르치는 장면.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니, 저 엑스가…
이선균이랑 같은 영화에 출연했었다고?”
꿈은 가끔 이렇게
웃기지도 않은 판타지를 만든다.
2. 과거의 인물이 악당으로 나오는 꿈
현실의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꿈은 사람을 소환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잔상을 소환한다.
그 시절 나는
사랑과 인내의 경계를 잘 몰랐다.
상대의 말투 하나, 잠수 한 번에
온 신경이 곤두서던 시절.
실제로 폭력은 없었지만
감정적으로는 늘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인정한다.
그의 무책임.
빈 약속.
미묘한 실종들.
그걸 사랑이라는 이유로
인내하지 말았어야 했다.
꿈은 그때의 감정을
폭력이라는 과장된 이미지로 바꿔 보여준다.
“그 관계는 건강하지 않았다”라고
뒤늦게라도 알려주려는 듯이.
3. 10년이 지난 지금, 왜?
나는 그와 2014년에 헤어졌고
그 뒤로 연애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남자’가 되어버렸다.
55세를 앞둔 지금,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 그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남자인 걸까?
GPT는 이렇게 말했다.
“꿈에 나타난 건 그가 아니라
그와 함께 있던 그 시절의 나다.”
감정의 경계를 모르던 나.
상대에게 휩쓸리던 나.
자기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던 나.
무의식은 그 ‘옛 버전의 나’를
이제 정리하라고
기묘한 영화를 틀어준 것 아닐까.
4. 무의식의 정리 작업
퇴직을 준비하면서
삶의 구조가 바뀌었고,
일상의 속도가 느려졌고,
나 자신에게 향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시점에 무의식은
오래 묵혀둔 폴더를 하나씩 꺼내 온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파일을 열어
지금의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그 파일 중 하나였을 뿐이다.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내가 예전에 머물렀던
감정의 마지막 지점을
이제 닫아야 할 때라는 신호.
5. 마지막 시절
그 관계는
‘내가 예전 방식으로 사랑하던 시절’의 마지막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그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버티고, 성장하고, 정리하고,
나를 중심에 놓았다.
그러니까 그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남자’가 아니라,
내가 과거에 머물렀던 마지막 페이지였다.
6. 이제 나는 그곳에 없다
그 시절의 나도,
그 관계도,
그 불편한 감정의 잔상도
이제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무의식은 그것을 환기시키기 위해
한 편의 기묘한 영화를 보여줬을 뿐이다.
우리는 가끔
완전히 지나간 일을 꿈속에서 다시 만난다.
여전히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주는 건지
잠시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혼란의 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안다.
그저 지나온 자리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그곳에 없다.
여기, 지금의 나로 돌아왔다.
우리의 현재는,
한때 머물렀던 곳을 떠나
지금의 자리로 돌아오는 시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이 떠나온 자리는 어디쯤인가.
그리고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