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ver5.5.updated.pdf
1. SAVE AS
10년 동안 퇴직에 대한 기록을 남겨왔다.
최근 업데이트한 파일명은,
mira.ver5.5.updated.pdf
이 단순한 파일명이
나의 현재 상태와
앞으로의 방향을 정확히 말해준다.
완성본이 아니라,
임시 저장된 초안.
정체성은 한 번 정해놓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계속 수정된다.
2. 글로자의 온도
이제 나는 나를 디자이너가 아니라
‘글로자’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일은
누가 시켜서도,
누가 평가해서도 아닌
내가 선택한 셀프 프로젝트다.
브런치의 ‘라이크’가 유일한 보상이고,
흐릿한 생각이 명료해지는 과정도
큰 보상이다.
글을 쓰며
내 안의 혼란은 정리되고,
삶의 격렬한 장면들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변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작가’라는 호칭은
과한 말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정확한 단어가 되었다.
내가 집중하는 테마는 퇴직이다.
10년의 기록과 경험,
퇴직을 준비하는 심리.
젊은 시절엔 상상도 못 했던 영역.
내 글이
퇴직을 앞둔 사람들에게
작은 인사이트라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3. 정체성을 ‘짓는다’는 감각
젊을 때 나는
정체성이 직업이나 역할로 결정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정체성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어떤 날은 나를 다시 설계하고,
어떤 날은 도면을 고치고,
어떤 날은 구석을 조용히 보수한다.
그 느린 반복 속에서
정체성은 형태를 얻는다.
4. ver5.5 — 과도기에서의 명료함
나는 지금
과거 버전을 완전히 버리지도,
그대로 유지하지도 못하는
중간 지점에 서 있다.
필요 없는 감정을 정리하고,
오래된 습관은 압축하며,
새로운 루틴을 천천히 추가한다.
그 과정이
나를 더 뚜렷하게 만든다.
5.5라는 번호는
과도기를 뜻하는 숫자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가볍게 한다.
5. 업데이트는 계속된다
퇴직은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삶의 운영체제를 교체하는 일에 가깝다.
앞으로도 나는
내 파일명을 여러 번 수정할 것이다.
때로는 과거 버전을 백업해 두고,
때로는 불필요한 폴더를
과감히 삭제하면서.
지금의 파일명은
mira.ver5.5.updated.pdf
이 문서를 열어둔 채
나는 오늘도
디테일을 다듬고 있다.
6. 독자의 버전은?
나는 지금
나의 ver5.5를 다듬고 있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파일명은 무엇일까?
어디쯤에서 수정 중이고,
어디쯤에서 다음 업데이트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