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케어 루틴
부제 : 돈과 몸과 마음 그리고 아웃핏
그날의 공기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조금 더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고,
커피 향도 이상하리만큼 부드러웠다.
마치 벨벳을 삼키는 맛.
오래된 먼지를 털어내듯
조용히 나를 정리한 시간이
천천히 어떤 문을 열었을까?
그러다가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깊은 구멍에 갇히는 날도 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듯이
변화의 방향은 선명했다.
온도의 차이만 있을 뿐.
1. 운은 움직인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점이나 사주는 그저 통계적 내러티브 일 뿐이다.
하지만 ‘운’이라는 것은
그보다 훨씬 조용하고,
훨씬 역동적이다.
아무리 애써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는데
또르르, 내 손으로 들어오는 일도 있다.
인생을 불평하려 하다가도
뜻밖에 얻은 것들을 떠올리면
조용히 입을 다물게 된다.
운이 바닥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그 바닥은 또 한 번 더 내려가
지하 3층쯤 되는 곳까지
나를 데려간 적도 있다.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는데
어느 날,
햇빛 아래 서 있었다.
그 빛도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삶이란
그런 주기로 흘러가는 것 같다.
삶이 언제나 균질한 감정을 주지 않는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았고,
어떤 날은 몸의 온도가 차갑게 식어
거울 속 표정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럴 때는
감정의 깊이를 해석하려 애쓰기보다
눈앞의 작은 일들을 하며 몸을 움직인다.
외부를 정리하면
내면의 웅덩이에 고인 물도
흘러나갈 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이 문장을 마음속에서 자주 되뇌었다
2. SUPERFICIAL
막막하던 시절,
미드에서 이런 대사를 들었다.
“When life feels miserable, I focus on the purely superficial.”
기분이 비참한 날엔
세수조차 번거롭다.
밝은 옷은 에너지가 너무 강해
입어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대사에 영감을 받았더,
기분이 아래로 꺼질수록
나는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한다.
집을 치우고,
묵은 물건을 버리고,
먼지와 얼룩을 닦아냈다.
침대 시트는 2주마다,
베갯잇은 일주일에 한 번 교체했다.
향이 은은한 로즈메리 허브 화분,
고양이와 함께 있었다.
그들에게서
내 안에서 꺼져가는 생명력을
위로받았다.
3. BODY & MIND
표면을 정리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몸과 마음이었다.
감정은 대체로 예고 없이 찾아왔고,
몸은 그 감정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기관처럼
움직임을 멈추곤 했다.
우울은 가늘고 긴 그림자처럼
어느 날 갑자기 등을 타고 내려왔고,
번아웃은
아무 예고 없이
나를 주저앉게 했다.
어떻게든 하루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려 했다.
식사 시간을 지키고,
햇빛 속에서 걷고,
몸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때로는
그 모든 노력이 무색할 만큼
감정은 몸을 통째로 잠식했다.
견뎌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럼에도
결국 나를 다시 꺼내는 건
상대적으로 가벼운 행동들이었다.
차분히 씻고,
깨끗한 잠옷을 입고,
잠들기 전 방을 정돈하는 아주 단순한 루틴들.
4. MONEY
돈은 늘 현실의 중심에 있었다.
숨이 막힐 거 같았다.
나는 수입과 지출을 매일 기록했다.
들어올 돈이 있으면
그 돈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조용히 계산했다.
투자 시뮬레이션은 내게
일종의 안전벨트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돈을 다루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돈이 만들어내는 감정이었다.
두려움, 불안, 기대, 실망—
그 감정들은
숫자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었다.
꾸준함, 기록, 작은 리듬.
사소하고 단순한 반복.
그런 루틴이
내 운의 방향을 조금씩 움직였던 게 아닐까?
5. OUTFIT
옷은 내 감정 상태와 내면의 에너지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낸다.
깨끗한 셔츠를 입는 일은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꽤 많은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했다.
목 주변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잘 다림질된 셔츠,
몸에 자연스럽게 맞는 스커트,
세심하게 관리된 스타킹과 구두.
정신이 흐트러진 날에는
이런 사소한 일에 쓸 에너지가 업다.
사람들은
옷을 외모 가꾸기의 범주로 생각하지만
나는 옷이야말로
내면의 상태를 반사하는
거울이라고 느낀다.
깔끔한 아웃핏은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6. 어느 날 운이 바뀌었다
아침 햇빛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커피 향이 진하게 오래 머문다.
나는 더 이상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0년 동안 쌓아온 시스템은
유기적 구조로 자라
머니트리가 되었다.
뇌세포를 총동원해서 세운 계획과
꾸준한 실천으로 만든 구조.
운이 좋았다.
wish you food luck, too.
Merry Chri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