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 버틴 기록
완전무결한 무희망
끝이 없는 절망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간신히 하루를 버티는 일뿐.
회사에서 숨만 쉬다 퇴근해도
몸은 녹초가 되었고,
휴일이면
나 자신과 보내야 하는 하루가
천 년처럼 길었다.
나는 몸을 돌보지 않았고
마음은 끝없는 자책과 후회,
미래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번아웃과 우울은
고통이라기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못하는 무의욕의 상태였다.
디스크가 터져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나는 마음의 통증과 육체의 통증을
저울질해 보았다.
둘 다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지만
만약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쉽게 답하지 못할 정도로
둘은 비슷하게 끔찍했다.
만약에
딱 하나만 고르라면
육체의 고통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정신의 고통을
잠시 마비시켜 주니까.
작은 불빛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아주 작은 빛을 발견했다.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잘 살아보겠다는 계획도 아니었다.
이대로는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아서
덜 가라앉는 방법이 필요했다.
돈이었다.
우울이 추상적일수록
나는 더 실질적인 것에 매달렸다.
마음이 관념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릴 때
머리는 숫자와 재정계획 쪽으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기록
먹고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삶,
이 빌어먹을 회사가 아니고서는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는
자괴심에서 벗어나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건 투자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운 행위였다.
아주 작게,
정말 초라하게,
가망 없어 보이는
씨앗 하나를
흙 위에 올려두는 기분.
나의 첫 머니트리였다.
성장
솔직히
초반의 투자는 엉망진창이었다.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있나!
싶은 결정을 반복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그 결과가
나 하나의 문제로 끝났다면
그나마 견딜 만했을 것이다.
노후를 나에게 의지하는
부모님의 운명까지 함께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중압감과 미안함으로
나를 압도했다.
불안을 베개 삼고,
공포를 이불 삼아
지샌 불면의 밤.
그럼에도
무언가는
자라고 있었다.
숫자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기록했다.
불안을 문장으로 바꾸면서 버텼다.
실수를 기록하고,
어떤 사고 패턴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되짚었다.
병신 같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술로도, 수면제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복용한다.
다만
이제는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는다.
머니트리는
희망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건
절망 속에서
나를 현실에 붙들어 두는
앵커 같은 것이었다.
요즘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의 공기가
스멀스멀 번진다.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돌덩이처럼
가라앉는 순간들.
그럴 때
술이나 수면제를 대신해
길고 지루한 영어책을 필사한다.
필사는
요가나 명상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마음을 가라앉힌다.
모르는 단어를 찾을 때면
다시 학생이 된 기분이 든다.
어떻게든
책상 앞에 앉아
버틴 시간들은
내게 분명한 피드백을 남겼다.
술과 수면제는
나를 파괴시키지만,
책상 앞의 시간은
나의 빈손을
조금씩 채워준다.
절망 한가운데서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방식으로
무언가를 심고
기다릴 수 있게 했다.
나의 머니트리는
그렇게
가장 척박한 조건에서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