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24. 불안에 대한 리포트

상실의 풍경

by Mira


1. 꿈



가수 박진영이 말을 한 마리 빌려줬고, 이름은 브레드였다.

나는 브레드를 타고 도시를 누볐다.


바닷가에서 승마를 하며 꿈꾸던 해방감, 자유를 느꼈다.

기분이 정말 좋았고, 아주 가벼운 마음이었다.


햇빛은 부드럽고, 브레드는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러웠다.

모든 것이 통제 가능한 세계처럼 보였다.



2. 상실의 고통


그 평온은 길지 않았다.

브레드가 계곡에서 고꾸라져서 크게 다쳤다.


병원비는 억대였다.

나는 퇴직금을 모두 털어도 모자란 금액을 계산하며

병원 데스크 앞에서 몇 번이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감당할 수 없는 세계가 벌컥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능력 밖으로 큰 병원비 앞에서 전전긍긍하면 암담해했다.

아파서 누워있는 브레드의 눈빛은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승마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달리는 말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균형감과 속도를

꼭 경험해보고 싶었다.


꿈속에서 브레드를 타고 달릴 때,

나는 그 로망을 드디어 이루어져서 행복하고 뿌듯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원하는 장면이 정확히 펼쳐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낙담스러웠다.


로망이 실현되자마자 사고가 났고,

말은 고통스러워했고,

나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성취가 실패로 이어지는 방식이 너무 잔인했다.




3. 무의식의 메시지


나에게 말은 오래전부터 로망이었다.

쓰러진 말, 감당 불가능한 병원비, 퇴직금 부족.


무의식은

내가 격고 있는 불안을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아마 꿈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네가 쥐고 있던 것들이 이제는 네가 감당할 수 없는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

내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4. 불안의 정체


병원에서 스트레스 검사를 받았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모두 저하.


심장이 뛰는 패턴도 불안정.

그토록 오랫동안 준비해 온 퇴직이었는데, 몸은 아직도 힘겨워한다.


‘오랫동안 긴장상태로 살다가 쉬는 법을 잊은 사람’

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결과라고 했다.


몸이 언제나 마음보다 먼저 진실을 흡수하고 고장 난다.

마음 편히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회복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퇴직이라는 현실은 이미 정리되었는데

신경계는 여전히 엔딩의 여파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불안은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아니었다.




5. 불안에 대한 리포트


불안은 여전히 무의식 깊이 머물러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

꿈은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다.

브레드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병원비는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대신 꿈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놓아도 된다.

네가 너무 오랫동안 책임이라고 믿어온 것들로부터.”



6. 전환기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불안은 여전히 내 영혼에 물들어 있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나를 무너뜨리려는 힘이 아니다.

내가 지나온 여정의 잔향일 뿐이다.


퇴직이든 이별이든,

삶의 무대가 바뀔 때

신경계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종종 ‘실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흔들림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다.

오랫동안, 죽을힘을 다해 버틴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몸이 이제야 긴장을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7. 전환기에 있는 사람들


불안이 영혼의 가장자리까지 번져 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텼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떨어져 내리는 중력을 견디는 것이다.


불안을 밀어내지 않고,

해석하려 들지 않고,

그냥 지켜보는 시간.

전환기는 그런 방식으로 지나간다.


천천히, 불규칙하게,

그러나 분명히 앞으로.


브레드가 다시 일어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결국 그 빈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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