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25. 1부. 희망퇴직, 준비되었나?

by Mira

Part 1. 나의 조건을 점검하다


1. 신호


25년 11월, 나는 결국 백기를 드는 마음으로 휴직계를 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우울증 진단, 상담, 약 처방.

그럼에도 나는 나를 의심했다.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는 거 아냐?”

“하기 싫어서 꾀부리는 건가?”

“게으름을 병으로 포장하는 건 아니지?”


몸이 먼저 무너지고,

신경이 끊어질 듯한 통증이 이어졌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끝까지 나에게 채찍을 들었다.



2. 상처


23년 여름, 출근길에 쓰러져 생긴 상처가 다리에 아직도 남아 있다.

나는 그 상처에 약을 바르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회사생활에 최선을 다했다는,

어쩌면 유일한 증표였다.

스스로를 의심할 때마다


나는 그 상처를 확인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증명하지 않았니?

그 일이 있고 나서도 무려 2년을 더 버텼다.



3. ‘업무’는 사라지고 ‘눈치’만 남아


내 업무는 리테일 공간 디자인이었다.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 매장은 가파르게 쇠퇴했고,

고정 업무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없는 일도 만들어서 해야 했다.

팝업 기획, 가상의 공간, 선행업무라는 명분으로.


실제 실행된 비율은 1% 남짓.

‘디자인’보다 ‘눈치’가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의미도, 가치도 사라진 일을 꾸역 꾸역하는 게,

나는 힘들었다.



4. 남은 50대를 여기에 바칠 것인가


30년 동안 남이 시키는 일을 했다,

50대에 접어들자 의미 없는 반복이 돌연 참기 힘들어졌다.



이 무가치한 일에

내 인생의 황금기를 바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휴직을 선택하면서

나는 직감했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냥 잠만 자고 싶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좋은 상태에 있고 싶었다.



5.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휴직과 동시에 나는 매일

퇴직을 점검했다.


회사원이라는 신분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가?

시간을 내가 책임 있게 설계할 수 있는가?

소속이 없어도 나의 정체성을 리빌딩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먹고사는 문제는 괜찮은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부동산, 생활비, 투자 구조를 전부 재조정했다.



6. 살아낼 수 있는가?


그래서 회사와 가까운 현재의 집을 임대하고,

B급지로 이사하기로 했다.

이 선택으로

주택대출을 ‘0’으로 만들고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 나를 지탱할 ‘기초체력’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소속이 사라져도 나는 혼자 살아낼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AI에게 똑같은 질문을

다른 버전으로 수없이 던졌다.

그때마다 세밀하게 피드백을 주는 GPT를 사용하면서


샘쿡 님에게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감사를 보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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