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49. 죽음에 대한 사유

문장이 풀린다

by Mira


지난주 내내 글을 쓰지 못했다.

이유는 없었고, 그래서 더 불안했다.

말이 멈췄을 때

나는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

문장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우울해서도, 절망해서도 아니었다.

나의 죽음만이 아니라 노부모의 죽음까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뜻밖의 여행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없는 무로 돌아가도 괜찮다.


내가 두려운 건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에 이르기까지 겪게 될지도 모를 고통과 통제 상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이상하게 말이 많아졌다.

죽음은 말을 막는 주제가 아니라

오히려 언어에 중력을 만들어 주는 주제다.


끝이 있다는 감각은

미루지 않아도 된다는 선을 긋는다.

그 선이 생기자 말들이 다시 지면을 찾았다.


어떤 여인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 속도로 살아온 자의 표정.

그게 어른의 포트폴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성형외과에서도 만들어 줄 수 없는 것.

명품을 입으면 품위 있어 보이고,

캐주얼을 입으면 편안해 보이는 상태.

그녀 인생의 최대 성취로 보였다.


한때 열광하던 것들은 결국 시시해진다.

지금 열광하는 것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걸 인정하면 삶이 재미없어질 것 같지만,

시시해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생명력이다.


태어난 지 석 달도 안 된 강아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 이유 없이 움직이고,

아무 목적 없이 살아 있는 에너지.

그 아이를 보며

나에게도 그런 에너지가 전이되기를 바랐다.


인간에게 동물이 필요한 이유는

위로나 교감이 아니라

존재의미에 대한 과잉을 내려놓게 하는 균형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물은 이유 없이 산다.

그래서 인간은 그 옆에서

의미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요즘 나는 필요한 만큼만 취하려 한다.

과잉 축적하지 않는다.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만큼만 소유한다.

돈은 그 자체로 방어이고 보험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은 소유해도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소유하지 않고 열망할 때 더 즐겁다.


소유보다 탐색의 즐거움


많이 쇼핑해 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소비하는 순간의 쾌감은 착시다.

사지 않는다기보다

지금 가진 것에 더 집중한다는 쪽에 가깝다.

먹는 것처럼 사라지는 소비만이

요즘의 나에게는 자연스럽다.


죽음을 깊이 생각하고 나니

삶에 대한 애착이 더 단단해졌다.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한 보상은

미래의 결과에 있지 않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그 순간 자체가

이미 가장 큰 리워드다.


생과 사는 반복되고,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은 유한하다.

그럼에도 오늘,

살아 있는 생명 옆에서

다시 말이 시작되었다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그저 문장으로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하면 불안하다.


원고가 완성되면 숨이 편안해진다.

몸의 압력이 훅 빠져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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