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85. witness

The Desire for Someone Who Knows

by Mira



사람은

자기가 겪은 경험,

특히 고통, 선택, 후회를

혼자만 알고 있으면

어딘가 미완성처럼 느낀다.


인간의 의식은

완전히 자기 안에서만 닫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문학과 예술, 시와 노래가 그 반증이다.


우리는 혼자서 생각할 수는 있지만

혼자서 완결되지는 못한다.


고통은 혼자 겪지만

그 고통이 “있었던 일”로 굳어지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닿아야 한다.

누군가의

눈,

귀,

혹은 문장 하나에.


그래서 인간은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에게 증명되고 싶어 한다.


내가 겪은 이 시간이

꿈이 아니었음을,

내가 내린 이 선택이

완전히 허공에 흩어지지는 않았음을.


그걸 확인해 줄

증인 한 명쯤.


가족이 있거나

결혼한 사람들도

이런 소망을 가질까.

아마도.

그래서 더 많은 증인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배우자,

자식,

오랜 친구.


그 관계들은

사랑 이전에

“나의 시간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확인해 주는 장치”에 가깝다.


아이러니한 건

증인이 많을수록

삶이 더 단단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증인이 많아질수록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는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많은 결속 안에 있으면서도

끝내 고독하다.


증인 한 명을 바란다는 건

외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식의 구조에 대한 요구다.


나는

내가 겪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혼자서만

떠안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어서도,

이해받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이 시간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나 말고도

한 사람은 알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인간의 본능이다.


나는

생으로부터 완벽하게 사라지고 싶다는 바람과

증인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로망을

동시에 품고 있다.

서로 모순될까?


완전히 증명되지 않은 삶은

아무리 충만해도

어딘가 닫히지 않은 채 남는다.


그리고 그 미세한 틈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


고독을 견디게도 하고,

관계를 만들게도 하고,

글을 쓰게도 한다.


증인을 원하는 마음은

약해서가 아니라

의식이 살아 있기 때문에 생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을 찾기보다

이 감각을 기록한다.


증인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증인이 없어도

삶을 끝까지 살아낼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어딘가에서

이 문장을 읽는

한 사람쯤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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