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300. Designing My Agin

노년, 열매 맺는 시간

by Mira




퇴직은 단순히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아니었다.

그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출근과 퇴근이 사라지자 시간은 넓어졌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데, 나는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 하루를 어떻게 쓸 것인지.


돈을 얼마나 벌 것인가 보다

어떤 속도로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퇴직은 비움의 사건이 아니라

선별의 시작이었다.

관계도, 소비도, 공간도

나를 기준으로 다시 정렬하는 시간.


나는 가끔 거리에서 나이 든 사람들을 오래 바라본다.

상실의 흔적으로 늙어가는 사람이 있고,

시간을 숙성시켜 열매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설명하지 않아도 중심이 느껴진다.

젊음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분위기.


우아함은 화려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태도 같고,

단단함은 큰소리가 아니라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중심 같다.


그런 사람을 보면 생각한다.

노년이 꼭 상실의 시간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정제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고.


나는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는 것과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것의 차이를 자주 떠올린다.


전자는 환경이 기준이 되는 삶이고,

후자는 질문이 기준이 되는 삶이다.


나는 어떻게 늙고 싶은가.

나는 어떤 얼굴로 시간을 맞이하고 싶은가.


퇴직은

그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든 사건이었다.


살아지는 대로 늙을 수도 있고,

디자인하며 늙을 수도 있다.


그 차이는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나는

열매로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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