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삶의 매뉴얼

How I keep my peace

by Mira

요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분’과 ‘실리’다.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가능한 한 기분이 좋아지는 쪽으로 하루를 이끌어간다.

좋은 음식으로 과식하지 않고 적당히 운동하고 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앞으로 10년, 30년을 더 산다 해도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고 건강한 날일 것이다.

이 시절을 즐겁게 보내고 싶다.


나의 30, 40대는 너무 컴컴해서 음미할만한 추억이 없다. 더 나이 들어서 추억할 수 있는 50대를 보내고 싶다.


월요일 아침부터 뭔가 꼬인다.

리더는 마감 직전에 다시 견적을 받으라 하고,

업체는 나름 합리적인 요구를 해도 까칠하게 군다.


예전 같았으면,

리더의 지적에 내가 한심해지고 자존감이 바스러졌을 거다. 실수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몇 날 며칠을 자책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구나 실수한다.

리더라면 그런 걸 관리하는 게 일이다.

나에게 개인적인 감정으로 그러는 게 아니고, 그가 속으로 나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한들, 그의 마음인데 어쩌랴.


그래서 나는

일은 빨리 처리하되,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는 고급스킬을 체득했다.


아침 9시, 휴게실에서 업체와 통화를 했다.

내 자리에서 통화하다가 자칫 통화가 길어지면, 다른 동료들이 불편해할까 봐.

그런데 무려 20년은 어린 후배들이 거기서 자빠져 자고 있다가,

내게 *“왜 휴식을 방해하냐”*고 하듯이


어이가 없었지만, 흥분하지 않으려고 했다.

“여긴 수면실이 아니에요. 몸이 아프면 의무실로 가세요.”


그랬더니 몰랐단다.


안 그래도 출근하자마자 여기서 코 골고 자는 신입들을 보면, 이게 뭐지? 싶었는데, 휴게실에서 통화하는 것으로 항의를?


월요일 아침부터 휴게실에 누워 자는 게 권리라고 생각하나?


승질이 올라오다가도 금세 차분해졌다.

내 생활 매뉴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센스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이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센스의 문제다.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고치고, 앞머리에 헤어롤을 감고, 쩍벌로 앉고 엘리베이터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


센스&센서빌리티는 논리가 아니니까.

혼자 열받을 필요 없다는 걸 금방 알았다.

내 소중한 감정을 그런 데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같이 일한 지 10년쯤 된 후배의 부친상 소식을 들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목례 정도 하는 사이.

병원이 회사 근처라 다들 간다지만, 나는 가지 않는다.


나의 매뉴얼이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친구였다면 지방이라도 간다.

진심으로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하지만 인사치레로 타인의 세레모니에 참석하지 않는다.


사회생활 잘하려면 좋은 일은 몰라도

슬픈 일은 챙기라고들 한다.

그런데 내 경험상, 의미 없더라.


물론 다녀오면 내 마음은 편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 가족의 일에 타인을 초대하지도,

타인의 가족사에 참여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 가족도 이런 데는 생각이 딱 맞는다.

가족상의 경우, 가족끼리 조용히 치르자는 데 동의했다. 우리 가족은 다른 거에서는 다 의견이 중구난방인데, 이런 면에서는 이견이 없다.


인사치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살면 된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시간 보내는 걸 정말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대문자 울트라 볼드 I 형 인간이라,

그런 에너지 소모를 회복하려면, 사흘은 족히 걸린다.


그래서 나는

정말 좋아하고, 챙기고 싶은 사람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 삶의 매뉴얼을 만들고 나니

이럴까 말까, 갈까 말까, 얼마 할까

망설이는 일이 줄었다.


“나는 10만 원 했는데, 쟤는 왜 7만 원밖에 안 했지?”

“나는 갔는데, 쟤는 왜 안 왔지?”

그런 투덜거림도 없다.

아, 그런 계산을 하면서 살기에 인생이 너무 짧아.


나는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남이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더 싫다.


그보다 더 싫은 건,

문제라고 느끼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남들 하는 대로 따르는 태도다.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고,

그걸 감수할 만큼의 실리도 생기지 않는 일은 축소하면서 산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만 잘 조절해도

인생이 훨씬 덜 피곤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52. 퇴준생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