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마렵지만, 오늘도 출근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동으로 해결책을 찾는 모드에 들어간다.
머릿속엔 시뮬레이터가 돌아가고,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쏟아낸 뒤 실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나누는 식이다.
말하자면, 문제 해결 탐색기.
디자인도 비슷하다.
예쁘게 만들고 잘 팔리게 만드는 일인 동시에,
사용자가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내 삶의 문제도 늘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뭐가 문제일까?
어디서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가 생기면 ‘뭔데?’ 하며 달려드는 사람이 있고,
회피하거나 쭈뼛쭈뼛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도전의식이 자극되면 돌이라도 깨는 심정으로 들이받는 쪽이다.
피하고 싶어도 자꾸 전두엽이 켜진다.
끝을 봐야 속이 시원하다.
최근, 한 후배가 자기 고민을 털어놨다.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을 이것저것 말하다가, 어느 순간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1. 회사가 싫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가 싫다.
벗어나고 싶다.
2.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이 두 가지는 반복해서 나오는 주제다.
나는 응원했다.
마흔 전에 자기만의 아이템으로 독립하기를.
당장 회사를 그만두기보다 2~3년의 계획을 세워 집중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그의 ‘솔루션’이라는 것이
자신과 부모님의 자금을 합쳐 ‘무언가를 한다’는 이야기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는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내 의견을 구했다.
그 마음도 이해했다.
하지만 점점 불편해졌다.
씨드머니가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건 맞지만,
자꾸 부모님의 돈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그건 혼자 할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 돈을 쓰는 거라면, 가족끼리 결정하면 돼.
그건 굳이 나한테 말 안 해도 될 일 같아.
내가 듣기에 조금 과한 욕심처럼 들리기도 해서.”
듣다 보면,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은 크지만
그걸 이루려는 치열한 고민도, 아이디어도, 실행도 없다.
푸념만 반복하며 푸르른 30대를 보내고 있다.
나는 회사에서 인간관계를 많이 두는 편은 아니다.
퇴직 후에도 연락할 사람이 한두 명 있을까, 말까.
그래도 나를 따르는 후배는 챙기는 편이고,
특히 독립이나 투자를 고민하는 친구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깨달았다.
정말 독립하거나 이직할 후배는 조용히 준비하고 실행한다.
‘퇴사 마렵다’는 말을 10년째 반복하는 사람과는 다르다.
20대 후반에 퇴사 계획을 세운 후배 하나는
3년을 집중해서 준비했다.
점심시간마다 공부하고,
회사 안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더니
결국 스스로를 고용할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갔다.
회사라는 시스템에서 자신이 맞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인식했고, 고용 상태를 레버리지로 활용했다.
퇴사를 생각한다면,
이직이든 독립이든 먼저 기한을 정하자.
그리고 입시 준비의 1000배는 더 무섭게 집중하자.
이직도 30대 중반이 마지노선이다.
마흔이 넘어 조직에 새로 들어간다는 건
‘적응’보다 ‘퇴직’이 더 가까운 현실이 된다.
좋든 싫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나를 고용해야 한다.
평생 누군가 나를 먹여 살려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고용된 지금, 뭘 준비해야 할까?
두 가지
1. 월급처럼 작동할 머니트리
2. 내가 나를 고용할 수 있는 SOMETHING
이 시기는 퇴사의 시기가 아니라, 준비의 시기다.
월급을 다 써버리는 여행보다
그 안에서 씨앗을 심는 삶이 필요하다.
저축하는 후배들도 기특하지만
모으기만 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
조금은 투자하고,
조금은 실패하고,
조금은 실험하면서
머니트리가 될 모종을 찾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멋지게 독립선언을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