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Craving for Likes
SNS의 ‘좋아요’는 왜 이토록 우리를 사로잡을까?
온라인에서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에 대한 공감과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현대 사회에서 특별한 경험이다. 특히 불특정 다수의 호응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가진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SNS는 자기 객관화의 장이기도 하다. 어떤 콘텐츠가 반응을 얻는지를 통해 나의 표현이 가진 시장성을 테스트해 볼 수도 있다.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한 것도 이 흐름 속에서다.
하지만 가끔은, 그 반응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삶의 무게중심이 가상공간으로 옮겨가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좋아요’를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온라인에서의 인정과 공감에 더 큰 의미를 두는 현상.
왜 그럴까?
심리학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나 보호자에게 ‘온전히 수용되는 경험’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존재의 가치를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 그것은 아이에게 생존과 직결되는 감정이다. 그 시기에 상처를 받거나 충분한 수용을 받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인정에 예민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온전한 수용’은 쉽지 않다. 부모도 그 역할을 처음 하는 초보자다. 갈등도 있고, 여유도 없다. 부모가 부모다워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 결핍을 이해하고 객관화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 다시 건드려질 때, 폭발하지 않고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된다.
그 힘이 커질수록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유난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도 결국 ‘그 사람의 내면 작용’ 일 수 있다는 걸 안다.
동일시, 투사, 미러링.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 단어들은, SNS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고양이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른다.
아웃도어 라이프를 꿈꾸지만 사무실에 묶인 사람은 광활한 자연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결국 우리는, 타인을 보며 ‘내가 원하는 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공감’이라는 반응을 기다린다. 그리고 문득, 내 그림 속 인물이 점점 어린아이로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내 안에 머물러 있는 작은 내가 말 걸고 있는 걸지도.
나는 누군가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아이에게 말을 걸고 싶다. 이렇게라도 마음이 닿는 누군가가 있다면 공들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SNS에 목숨 거는 게 바보 같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걸 통해서라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삶을 버텨내는 방식일 테니까.
다만,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잠시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