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Remains after everything is let go
‘비운다’는 단어는 이제 너무 미니멀리즘 유행어처럼 들린다.
마치 ‘버린다’는 것을 강조하는 강박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에 비해 ‘선택’은 좀 더 이성적이고 능동적인 느낌이다. 감정보다는 판단이 앞서는.
그렇다면, ‘내려놓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 대상은 관계일 수도, 감정일 수도,
혹은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끌어안고 있는 고통스러운 마음 상태일 수도 있다.
나는 어떤 단어를 찾고 있었던 걸까?
결국, 나는 ‘내게 남긴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 시작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떠나보냄에서 시작됐지만.
그건 의지가 담긴 이별이 아니었다.
‘내려놓음’.
어쩌면 이것이 내가 찾던 가장 가까운 단어일지도 모른다.
진흙과 피와 땀이 뒤섞인 듯한 감정.
나를 성장시키고 응원하는 관계가 아닌,
내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기만하던 관계를
너무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그 관계가 끝난 자리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만이 가득했고,
나는 그 공허, 후회, 미련으로 꽉 찬 내면.
마치 가시나무를 깊이 껴안듯이.
시간과 의지, 다짐의 도움으로
겨우 그 감정을 서서히 내려놓던 계절을 기억한다.
사람마다 그 대상은 다르지만
이런 상태를 지낸 이야기는 많다.
• 파괴적인 관계
• 경제적인 파산
• 불가항력적인 불운
• 고질적인 질병이나 중독
그 대상이 무엇이든,
‘내려놓지 않으면’
삶 자체를 지속하기 어려울 만큼의
고통에 내동댕이쳐지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 있어 ‘내려놓음’이란
결국 나를 파괴시키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이성적으로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함을 알았지만,
그러지 못한 선택을 반복했던 나.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질문한다.
왜 나는
‘원하는 것’과 ‘주어진 것’ 사이에서
늘 표류하는가?
감정을 휘젓는 파도 앞에서
나는 질문을 멈추지 못했다.
정신분석학, 철학, 종교서적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마치 범인을 추적하는 검사처럼,
내 영혼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그 정체를 밝혀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모든 노력 끝에 찾아온 건
평화도 아니고 안정도 아니었다.
무거운 공허감.
난사하듯 쏟아지는 질문들.
답을 찾지 못하는 무력감.
‘내려놓음’의 경험은
단순하지 않았고,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일이 술술 풀리거나,
홀가분해지는 일 따윈 없었다.
그건 마치,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서
어디로든 나아가야 하는 조난자의 첫걸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