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al, not empty. Full of joy
태어나서 100년을 산다고 해도
과연 ‘나’로 살아가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타인의 시선, 기대, 평가를 넘어서
오롯이 내가 느끼는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격려하며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 시간.
현대인은 중세의 귀족보다 더 많은 물질적 축복 속에서 산다.
더워도 덥지 않고, 추워도 춥지 않게 해주는 기계들과
배가 고플 새도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들.
매달 쏟아져 나오는 신형 제품들 각종 스타일의 옷과 부엌살림들.
인류 역사상
평범한 인간이 이런 풍요를 누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왜 자살률은 높아지고,
정신질환은 더 다양해지고,
마약으로 삶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걸까?
가만히 돌아보면
내 인생에도 ‘죽음’과 ‘사라짐’에 매혹됐던 시간이 있었다.
현실의 괴로움,
닿지 못한 이상에 대한 좌절,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해 무기력했던 날들.
생이 끝나지 않는 ‘입시의 늪’ 같고,
사회에서 영원히 자리를 찾지 못할 것 같은 , 실업자의 공포에 짓눌렸던 시절도 있었다.
20~30대까지의 삶은
누군가가 정해준 기준과 성취에 웃고 울던 시간이었다.
40대가 되자, 질문이 쏟아졌다.
“이게 단가?”
“인생이 이게 전부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만 남은 시간.
그게 성큼 다가오니 허망했다.
더 근사한 무언가가 있는 줄 알았는데,
마흔이 넘고 보니 ‘인생은 정말 이게 다였다.‘
게다가,
언제 닥칠지 모를 해고와 정년퇴직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인생이 참 별거 아니라고
허탈해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 시간들을 모아서,
‘퇴직 준비’를 해야 했다.
큰 성취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25년 일한 회사를 떠날 땐
‘멋지게’ 떠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정년 이후에도
돈 걱정 없이,
남이 시키는 일은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에 열정과 시간을 쏟고 싶었다.
질문은 점점 더 깊어졌다.
단순히 퇴직 이후의 삶을 넘어
노년의 시간,
그리고 ’ 죽음‘에 이르기까지 파도처럼 질문이 넘실거렸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심플한 삶’ 이란,
모든 걸 비우고 텅 빈 상태로 사는 게 아니다.
나는 내게 남아 있는 것들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더 주목했다.
자산의 규모보다
**원활한 현금 흐름**을 선택했고,
무의미한 관계 대신
‘내면의 소리, 꿈과 무의식에 더 집중했다.
사교적인 다수의 관계보다
한두 명의 깊은 인연에 만족하며
정원을 가꾸듯 관계를 돌봤다.
연예인 가십은 차단하고
**역사의 흐름과 장면에 집중했다.**
책과 영화를 통해 만나는 그 이야기엔,
인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들이 있다.
돈, 시간, 관계,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까지.
그 모든 것에서
‘의미 있는 것과 무용한 것을’ 나누고
중요한 것만 걸러내는 연습을 반복한다.
일상에서 신경을 긁는 사람,
자잘한 사건에는 ‘감정의 스위치’를 끈다.
그 네거티브한 에너지가 내 얼굴에,
내 표정에 남는 것이 싫어서.
나는 ‘감사하는 얼굴로 나이 들고 싶다.’
무력한 일상에 찌든 얼굴 대신에.
그런 얼굴과 표정은 성형외과의사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게 있는 것들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누리고,
온전히 나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
돈, 물건, 관계, 조건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만 남기는 단정한 삶**을
차분히, 또 단단히 이루고 싶다.
인생의 밀도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나로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