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쉬웠을까
이렇게 될 줄 몰랐어?이
Prolog
대학 동기들의 단톡방이 오랜만에 까톡거린다.
남달리 남의 시선 아랑곳 않고 똘똘 뭉쳐 놀아댔던 우리는 당시 가난에 짓눌려있었다.
어느 여름 밤 다섯이서 아이스크림을 양 많게 먹고 싶어 투게더 하나를 사서 호숫가 풀섶에 둘러 앉았다.
투게더에 나무젓가락을 꾸욱 찔러 넣고 빼내니 커다란 아이스크림 바가 되었다.
(숟가락은 없었는데 나무젓가락 하나는 왜 있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한 명씩 돌아가며 베어무는 짓이 그 땐 왜 웃기고 즐거웠는지..
나무젓가락에 꽂힌 아이스크림이 꽤 작아졌을 때 지 입 속에 송두리째 넣었다가
쑥 도로 빼낸 그 새끼가 누구였나 얼굴이 기억나진 않지만
더러워서 그건 못 먹겠다, 니 다 쳐먹으라며 욕은 실컷 해줬던 건 기억이 난다.
이제 그들은 대기업 직원이, 선생님이, 공무원이, 엄마가 되었고
가난의 그림자도 얼추 거둬진 듯 하다.
말투에는 점잖이 베어있고 낮 시간 잠깐의 수다 시간 중에도
3시 10분 '땡' 하는 쉬는 시간 끝났다는 종소리가 났다며 후다닥 단톡방을 나갈 정도로 사회적 규제에 익숙해져있다.
많이 어른이 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말이라도
'달팽이 똥싸는 소리 그만 하고 이따 쉬는 시간 돌아오면 다시 들어와!'' 라며
옛날같아 보이려 한다.
직장 동료도 배우자나 자녀도 늙수구레한 얼굴도 없이 우리끼리의 이야기만 떠다니는 단톡방에서
우리는 마치 그 때의 우리인냥 즐거운 착각을 재밌어 하며 낄낄댔다.
청춘의 때를 함께 한 사람들은 참으로 소중하다. 5년 넘게 못 만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무작정 청량리에서 새마을호 타고 밤새 달려 정동진에 도착한 동기 녀석들이 다음날 아침에 삐삐에 대고 돌아갈 차비가 없으니 차비를 갖고 데릴러 오라고 하면 고속버스터미널로 기꺼이 들고 나가야했었다.
터미널에 가보면 나 말고도 몇명이 차비를 들고 나와있었고, 에라 모르겠다, 내일 수업은 재끼자며 함께 정동진으로 출발해버렸던 그 때.
우린 모두 넉넉지 못했고 계좌이체를 생각할만큼 카드사용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았고 TTL로 시작한 휴대폰 시장은 다음해에나 하나 둘 등장했으니 지금처럼 모든 소통이 편리하지도 빠르지도 못했다.
대신 기차를 타면 밤새 가야했던 정동진이 의외로 버스론 금방 도착하고,
아침부터 쫄쫄 굶은 녀석들하고 같은 방향으로 추운 바다를 바라보며 먹었던 육개장사발면은 세상 최고 맛있다는 걸 알게 한 추억을 얻을 수 있었다.
춥고 거친 바다가 반복적으로 내지르는 파도소리는
21살에 우리들이 느끼는 풀리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끊임없이 밀려와대는 당장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 앞에서 주눅들지 말자는
작았던 읊조림을 대신 소리쳐 주고 있는것 같아, 한참을 멀거니 지켜보고 서있었던 것 같다.
높은 파고를 뒤로 하고 마구 펄럭이는 롱코트를 입은 채 일회용카메라로 찍은 기념사진은
마치 영화 knocking on the heavens door의 마지막 장면의 바닷가처럼
비장해보였다.
우린 만났고, 부딪쳤고, 위로했고 헤어졌다.
그 이야기가 희미해져가기 전에 묶어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