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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심 Oct 27. 2022

내 루이뷔통 가방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에게 배운 삶.

20대, 서울.

나는 그 당시 '흔한 도시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휴일이면 한 껏 뽐내고 친구들과 맛집에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백화점에 주야장천 드나들며 윈도쇼핑을 하고, 몇 달 치 월급을 모아서 명품가방을 사는.

친구들도 그랬고, 직장 동료들도 모두 같은 패턴이었으니 이상하긴 커녕 너무나도 당연한 '직장여성의 삶'쯤으로 여겨졌다.

<서울, 출처 구글>


30살, 영국.

갑작스럽게 가게 된 영국이지만 내가 모아뒀던 명품 가방들은 잘도 챙겨갔다. 혹시나 분실할까 두려워서 수화물로 보내지도 못하고 기어코 모두 기내용 캐리어에 담아 갔다.


영국뿐 아니라 스페인, 미국,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날 때도 늘 명품 가방과 함께 했다. 내가 모은 가방들은 나의 '제2의 분신'들 이니까. 가끔 친구들은 가방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 가방들은 모두 진짜냐, 중국에 가짜가 많다던데 한국도 그러냐고.

그때 난, 그런 질문들을 명품에 대한 그 친구들의 관심인 줄로 착각했다.

오만한 착각이었다.

<루이뷔통 가방들, 출처 구글>


하루는 스페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이탈리안 남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My dad taught me how to work to earn money and how to spend the money to live."

'나는 아빠한테 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하고, 살기 위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웠어.'


즉, 운동은 공원에서 달리기를 해도 되는데 굳이 멀리 있는 Gym에 비싼 돈 주고 등록을 하는 이탈리안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한 거다.

(이건 또 다른 문화 차이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탈리아 사람은 운동에 돈을 투자하는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친구는 남편에 대해 투덜대며 이야기를 했지만, 나에겐 '댕-' 하는 종소리가 들리는 순간이었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는지 배운 적이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월급의 일정액은 저축을 해야 한다는 건 자연스레 알고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백화점에 쇼핑 가고, 명품 가방 사는 게 유일한 목적이었던 20대를 보낸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모은 명품 가방들이, 내 루이뷔통 가방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친구는 스페인뿐 아니라 영국에도  채나 있는, 금전적으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상태였다. 농부의 딸로 자란 그녀는,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다. 미용사로 일하던  잠깐 실직의 상태에 있을 때에는 커피숍 아르바이트와 식당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도 재력이면, '실직' 같은 상황을 핑계 혹은 기회로 삼아서 일하지 않아도   같았는데, 친구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고 본인 몸이 성한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소위 '먹고 노는 '   없다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인생을 즐겼다. 이탈리안의 와이프답게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을 늘 준비했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을 정말 즐겼다. 주말이면 춤을 추러 가기도 했고, 가끔씩은 쇼핑몰에서 특가 세일하는 옷을 사고 기뻐하기도 했다.

<스페인&이탈리아 부부가 만들어준 홈메이드 피자들>


게다가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까지 있었다. 자기가 번 돈의 일부를 늘 동물 보호, 환경 보호 등 여러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데, 그 금액이 상당히 커서 놀랐다.

'그 기부금을 6개월만 모으면, 명품 가방이 몇 갠데!'


20대의 '명품 바라기' 나였다면 상상도 못 할 행동이었다. 그런 친구를 만났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내가 '기부천사'로 등극할 리는 없었지만, 큰 가르침을 받았다.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기부 문화'와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는 '배려'에 대해 자주,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외국 친구들을 만날 때 늘 챙기던 명품 가방들은 멀리하게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볍게 들 수 있고 더러워지면 세탁기에 넣어 빨면 그만인 '100% 면 에코백'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최애 가방'이 되었다.

<여러 가지 에코백들, 출처 구글>


그리고.

나의 생각이 점점 바뀌었다. 나 자신도 바뀌었다.

2년 후 한국에 귀국해서는 가방들을 모두 팔았다. '영국 생활 이전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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