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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심 Nov 04. 2022

프랑스, 파리. 깨발랄 그녀들의 정체.

발랄했던 그녀들은 소매치기.

10여 년 전 결혼 후 시작된 영국 살이.

'스페인-이탈리안' 부부와 함께한 홈스테이를 거쳐 2년 간 살 집을 계약한 후 우리가 제일 먼저 계획한 것은 '프랑스 파리 여행'이었다.


Paris, France.

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갔다면 최소 7박 8일 정도의 일정으로 여행 계획도 철저하게 세웠겠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거리가 가까운 만큼 주말에 저렴한 비행기 티켓이 있으면 종종 방문할 생각으로 2박 3일로, 큰 계획 없이 여행에 나섰다. 워낙 짧은 일정인지라 캐리어도 없이 남편의 배낭 하나, 나의 쇼퍼백이 우리 짐의 전부였다.


공항에서 지하철 역까지 이동한 후 남편은 개선문, 에펠타워 ,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트르 언덕 등 우리가 관광할 곳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하철 역 벽에 붙어있는 큰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지도를 봐도 모르니, 남편보다 몇 걸음 뒤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때,

많아야 20살 정도로 보이는, 매우 이쁜 서양 여자아이 셋도 지도를 보기 위해 우리 쪽을 향해 걸어왔다.

이쁜 아이들 셋은, 어린 친구들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로 수다를 떨면서.

벽에 붙은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안 그래도 이쁜데 더 이쁘게 웃으면서.

그러면서...


남편이 매고 있던 배낭의 지퍼를 열었다.



와우. 이것이 바로 '파리 소매치기' 로구나!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남편은 지도에 집중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HEY!"


일단 이쁜 그 애들을 불렀다.

애들과 함께 남편도 그제야 뒤를 돌아보고 묻는다.


"왜왜?"

"아오. 얘네가 당신 가방 열고 있잖아!"


그리고  '야, 너 왜 내 남편 가방 열어?'라고 영어로 당당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하고픈 말이 머리로 아직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입으로 먼저 나오고 있었다.


"HEY! UH?

WHY! UH? WHY?

WHY ARE YOU, UH?

아니 아니 WHY DO YOU OPEN,

아니 아니, WHY DID YOU OPEN MY HUSBAND'S bag?"


'야! 어?

왜, 왜?

왜 너, 어?

아니 아니, 왜 열어?

아니, 왜 내 남편 가방 열었어?'



짧은 영어탓에 내가 이렇게 버벅버벅 더듬고 있는 동안..

이쁜 애들은 가버렸다.

지하철 계단을 사뿐사뿐 올라가면서 뒤돌아서는 내게 매력적인 미소까지 날려주었다. 깔깔깔 웃으며.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굴욕적인 순간.


내 성격으론 쫓아가려 했으나, 다행히도(?) 침착한 남편이 말려주었다. 물론, 그리고 나선 왜 옆에서 한마디도 안 하고 있었냐고 구박은 좀 받았지만.



근데 나중에 사귄 유럽 친구들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 이쁜 아이들(?)이랑 절대 싸우면 안 된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다 깡패들이랑 연결이 되어있어서 그 주위에 깡패들이 지켜보고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일제히 몰려와서 나와 남편에게 못된 짓을 했을 거라고.

결국 말려준 남편 덕에 그래도 못된 짓을 면한 셈이다.



파리 여행의 첫날 어린 소매치기 아이들을 만난 탓에, 파리는 한동안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였다.

첫날 소매치기를 만났으니 2박 3일 동안 어딜 가든 소매치기가 오는 건 아닌가 눈치 보느라 즐기는커녕 늘 불안하기만 했고, 빨리 파리를 벗어날 시간만 기다렸던 것 같다.


그땐 몰랐다. 소매치기한테 말할 땐 유창한 영어가 필요 없는 건데.

그냥 한국말로 했어도 되는 건데.

걔네들이 영어를 한다는 보장도 없는 건데,  그때만 해도 백인은 죄다 영어를 잘하는 줄 알던 시절이었다.



2년 동안 '소매치기'가 두려워서 프랑스는 다시 방문하지 않았기에, 그 2박 3일이 내가 본 프랑스의 전부이다. 기회가 된다면 철저한 계획으로 다시 한번 프랑스를 방문하고 싶다. 다시 방문했을 때도 그 아이들을 또 만난다면 이번엔 주저 없이 "WHAT!!" 하고 호통 칠 수 있을 것 같다.

<파리 카페 앞 거리에서 그림그리는 화가들>  <녹인 초코렛과 우유가 따로 서빙되는 '초콜렛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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