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살이 영어 episode 01
10여 년 전 영국 연말, 하루는 남편과 시내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몇 달의 외국생활로 가장 많이 향상된 것은 '영어실력' 이 아닌 '눈치실력'!
옆 테이블의 사람들을 보니, 밥을 다 먹으면 그 자리에서 웨이터를 불러서 계산을 하는 것 같길래 우리도 식사를 마치고 웨이터를 불러서
“Bill please.”
'계산서 주세요.'
라고 당당히 말했다.
“Okay, give me one second”
'네, 잠시만요.'
하고 간 웨이터. 잠시 후 그는 계산서가 아닌 맥주를 가지고 왔다.
Bill.. bell.. beel.. beer...?!!!
우리의 엉망인 발음 탓에 계산서'Bill'은 맥주'beer'가 되어버린 것이다.
당황한 남편과 나는 2초 정도 서로의 눈에서 동공 지진을 느꼈지만
"그냥 맥주 시킨 척 하자. 자연스럽게 해."
"그래, 자기가 한 잔 더 마셔."
하고 복화술로 속삭이곤, 웨이터에게 웃으며 ”Thank you!”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맥주를 다 마시고 진짜 계산할 땐, 'bill' 단어를 말하는 순간에 양손의 엄지, 검지 손가락을 맞대서 직사각형을 정성스레 만들어 보여주었다.
혹시 또 못 알아듣고 맥주를 줘서 집에 밤새 못 갈까 봐.
준비 없이 갑작스레 간 영국. '영어'는 특히나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주문한 음식이 잘못 나와도 그냥 먹고,
새로 산 물건이 불량이어도 환불 안 하고 새로 하나 더 사고.
외국생활에서 말이 안 통하면, 역시 사람이 참 순해진다는 걸 이 날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