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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욱 Nov 10. 2023

나는 복실이 만나러 제주도 간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 하는 일’이라고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말했다. 

 내 글쓰기에 등장하는 대상을 들여다보았다. 부모님, 별과 구름, 형제자매, 복실이, 딸, 남편, 등 시간과 공간을 넘어 머릿속에 넘나 든다. 그 대상을 문장으로 만들어 연결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한다. 블로그에, 일기장에 남기는 순간 기억은 추억으로 바뀌면서 영원히 남는다. 복실이를 불러본다.      


 복실이 일기


 설날 전날 이 집에 들어왔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 오후였던 것 같다. 

 태어난 곳은 인가와 멀리 떨어진 밭에 있는 창고였다. 태어난 지 3개월 되었다. 작년 12월 엄동설한에 엄마 개와 아빠 개가 한눈을 파는 사이 혼자 씩씩하게 가출했다. 부모 개는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집을 나가도 찾지 않았다. 주인도 사실 우리 개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창고를 지키는 동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터. 

 창고를 뒤로 하고 밭 나무와 나무 사이 공간을 달렸다. 앞으로만 자꾸 나아갔다. 밭 너머 무엇이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돌담이 낮았다. 가뿐히 그 담을 넘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코끝을 간질였다. 처음으로 맡아보는 시원한 공기, 커다란 나무 위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잠깐 발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나에게 시간이 흐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들처럼 우리에게는 하루라는 24시간이 얼마나 긴지 잘 느낄 수가 없기에. 

 주인 없는 개들이 서너 마리 무리를 지어 다녔다. 겨울이라 먹을 것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그들에게 걸리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 담벼락에 몰래 서서 그들이 내 앞을 지나갈 때까지 숨을 쉬지 않았다. 

 밤이 되면 어느 밭에 있는 창고 처마 밑에서 별을 보며 잠을 청했다. 먹을 것도 없었다. 창고 집에 있을 때는 주인이 먹다 남은 음식을 주어서 실컷 배부르게 먹는 날도 가끔 있었는데. 후회했지만 이 순간 어쩔 수 없다.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야 했다. 무밭에 있는 무잎을 이빨로 물어뜯어 먹었다. 눈이 내리면 쌓인 눈을 먹기도 하였다. 눈 맞고 자라고 있는 겨울 배추도 식량이 되곤 하였다. 땅을 열심히 파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가끔 흙 속에서 사람들이 미처 캐지 못한 감자나 고구마를 발견한 날도 있었다. 

 배가 고픈 날이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남긴 냄새 흔적을 간신히 찾아내며 원래 창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왔다는 한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나를 발견한 원래 주인은 바로 자동차에 태우고 새로운 집으로 데려왔다.

 원래 주인과 친구였던 이 집의 주인에게 나를 두 팔로 안아 건네주었다. 주인 외에는 사람 구경을 한 적이 별로 없다.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남자 둘, 중학생처럼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서서 지켜보았다. 새로운 주인은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나를 샴푸로 씻겼다. 세 명도 아빠를 따라 목욕탕 안으로 들어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목욕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꼼짝을 할 수도 없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앉아 있으니 눈이 저절로 감겼다. 물로 여러 번 깨끗하게 헹구더니 수건으로 털의 물기를 닦았다. 방으로 안고 가더니 드라이기로 남은 물기를 닦아 주었다. 그리고 창고로 데려갔다. 계속해서 하은이 언니, 민서·현서 오빠가 따라왔다. 귀엽다고 나의 귀를 만지고, 털을 만지고, 발을 만지기도 하였다. 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은이 언니는 나의 눈높이에 맞추어 쪼그리고 앉아서 계속 말을 걸었다. 그러던 중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다. 고음이다. 

“어머! 얘. 왜 이렇게 못생겼어?”

순간 자존심이 살짝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 집에서 살아가려면 이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사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눈 속눈썹이 자라면서 눈동자를 계속 찔렀다. 아프다. 눈을 크게 뜰 수가 없어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눈이 자꾸만 작아졌다. 그러니 누가 내 얼굴을 보면 눈이 짝짝이처럼 보여서 더 못생겨 보인다. 인간들은 영문도 모르고 외모만 보고 못생겼다고 말했다,

 그나저나 이 집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첫날이니까 조용한 척 있자. 가만히 숨죽여 있었다. 말을 붙이면 더욱 내숭을 떨었다. 사실 어떤 소리를 내야 할지 모른다. 부모 개가 나에게 개의 언어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놀아주고 나더니 언니와 오빠는 밤이 늦었다며 잘 자라고 하고 집 안으로 사라졌다.

 아직 개집은 보이지 않았다. 목이 마르면 먹으라고 물을 갖다주고, 하얀 쌀밥을 쇠고기 미역국에 말아서 한 대접 주었다. 옥돔 생선 머리, 콩나물도 나왔다. 허겁지겁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하는 진수성찬이다. 다 먹고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할까 하는데 새로운 주인이 사용하다가 버리려고 내놓은 발판 몇 개를 창고 안에 겹겹이 쌓아놓고 그 위에서 자라고 한다. 창고 안이어서 바람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긴장했던 몸이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거의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곯아떨어졌다. 

    

 지우기 일기


 복실이. 태어난 지 두 달 정도 된 강아지. 올해 설 전날 친정에서 그 애를 처음 만났다.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훨씬 작았다. 그 눈은 거의 감겨 뜨지 못했다. 가끔 그 눈을 두 손을 이용하여 강제로 벌려보면 눈알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한눈에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덩치도 강아지에 어울리지 않게 컸다. 저렇게 못생긴 아이를 어떻게 데려왔냐고 남동생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개가 세 마리를 낳았는데 수컷 두 마리는 이미 다른 사람이 데려가고 복실이만 남았다는 것이었다. 너무 못생기고, 눈 때문에 아픈 아이처럼 보여 아무도 안 데려간 것이 확실했다.      

 복실이 친정에 온 날부터 업무가 하나 더 늘었다. 제주도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데 2월에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의사를 만났다. 1차 예방접종과 심장사상충 약을 먹이고, 진드기약을 발라 주었다. 눈을 들여다보더니 ‘안검내반증’이라고 하였다. 속눈썹이 눈 안쪽을 찌르는 병으로 선천성이리고. 쌍꺼풀 수술로 개선 가능하다고 하며 일단 약물치료를 해 보자고 하였다. 안약을 받았다. 2차 예방접종을 간 날 눈을 집고 왔다. 눈이 조금은 커 보였다. 매달 심장사상충 약과 진드기약을 받아와서 먹이기, 눈은 조금 더 지켜보다가 수술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이제 중성화수술도 기다리고 있다.      

 복실이를 보면 즐겁다. 그 아이는 항상 웃는다. 웃음이란 곳곳에서 느끼는 기분 좋은 감각을 주로 한 곳에서 표현한 것이라고 미국의 행복 전도사인 유머학자 조쉬 빌링스가 말했다. 커다란 몸에 두 눈을 감고 길게 혀를 내밀고 함빡 웃는다. 그 미모에 넋이 나갈 정도다. 뭐가 좋은지 우리 식구 중 누가 나타나도 꼬리를 흔들며 진심으로 맞이한다. 친정 마당 집에 도착하자마자 “복실아!” 부르며 뛰어간다. 몇 발자국 더 가면 벌써 복실이는 온몸으로 뛰고 있다. 웃는 얼굴만 보인다. 개 줄에 묶여 있는데도 달려든다. 가까이 가면 반갑다고 덤벼든다. 저리 가라고 해도 무릎 아래 바지 천을 입으로 물고 놓지 않는다. 흙이 옷에 묻어 더러워져도 개의치 않는다. 

 어떤 음식을 주어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어떤 날은 가보니 하루에 다섯 끼를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식사하고 난 후에 주는 밥 세 끼, 중간에 사료 두 번. 한참 살이 찌더니 다행히 몸이 커지면서 저절로 살이 빠졌다. 

 먹는 것 외에 욕심이 없다. 개 줄에 묶여 있어도 혼자서 재미있게 논다. 무료하지 않게 땅파기, 땅에서 온몸으로 흙 묻히며 뒹굴기, 커다란 나뭇가지 사이에 얼굴 올려놓기, 무밭에서 무 밟기, 창고 안은 그야말로 복실이 놀이터다. 쌓여있는 물건 하나하나 계속 건드리며 흩트리기, 물그릇, 밥그릇 가지고 소리 내며 놀기, 바람이 불면 날아오는 나뭇잎, 나뭇가지, 돌과 같이 놀기. 놀아도 놀아도 끝이 없어 보인다. 비가 오면 밖에서 쏟아지는 비를 한없이 맞고 있다. 꼴이 안쓰러워 집으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러도 들은 척 안 한다. 다음날 들여다보면 언제 비를 맞았나 싶을 만큼 깨끗하게 목욕한 것처럼 몸은 단장하고 눈앞에 나타난다. 그때 알았다. 야생동물이 목욕을 안 해도 그다지 지저분하지 않은 이유를.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수필집에서 행복을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이라 말했다지. 복실이를 데리고 동네를 10분 정도 산책한다. “가자.” 함께 발을 맞추기 시작한다. 복실이를 관찰한다, 걷으면서 어떤 장소를 좋아하는지, 어떤 나무 아래서 발을 멈추고 냄새를 맡는지 눈여겨본다. 한 번은 산책하다가 담 너머에서 커다란 개가 처음 본 복실이를 보고 짖었다. 자기보다 더 큰 개가 크게 소리 짖자 꽁무니를 빼며 집으로 뛰어갔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겁이 아주 많다. 동네를 산책할 때면 아무 잡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로지 둘만 호흡을 맞추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게 걷는다. 이보다 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시간이 있을까.     

 소소한 행복을 매일 누리고 싶은데 복실에게 가는 길이 너무 멀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야 한다. 매일 가지도 못한다. 한 달에 한 번 떠나는 나.


조쉬 빌링스는 반려동물은 자기 자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이 세상의 유일한 생명체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키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의 뜻을 실감한다. 자신보다 더 나를 사랑해 주는 이 생명체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늘도 복실이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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