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성찰이 더 나를 성장시킨다
1) 수업 시간에 몇몇 학생들 때문에 화가 날 때가 있다.
처음에는 화를 참는다. 화를 내면 나만 손해다. 교실에서 학생인 관객들 앞에서 검투사가 되어 아이와 전투를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교실에서 방해꾼 학생은 교사가 화를 내면 왜 화를 내세요? 하고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자기 잘못을 인정 안 할 때가 많다. “왜 저만 가지고 그러세요? 다른 학생들도 떠들었는데요.”라고 할 때면 숨이 콱 막힌다.
2014년 진로 교사로 00 고등학교에 있을 때 1학년 진로활동을 맡아 수업을 진행하였다. 12반으로 400명이 넘을 정도로 학생들이 많았다. 일반계 고등학교로 남녀공학이었다. 내신을 보지 않고 원서를 접수하면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배정되는 시스템을 가진 평준화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였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불합격한 학생들과 내신이 안 좋아 처음부터 포기를 해서 가지 못한 학생들이 한 반에서 10명 정도는 교실에 있었다. 정신적으로 어린 남학생들도 한 반에 몇 명씩 존재하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남녀학생들도 한 반에 서너 명 보였다. 학생들의 학력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학생 중에 모모라는 학생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잠을 많이 잤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잠을 안 자고 진로활동에 참여하였다. 자신의 꿈을 쓰는 시간이었다. ‘동물조련사’가 되겠다고 하길래 평상시에 잠을 자느라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학생이어서 ‘그러면 될까! 라고 한마디 말을 했다.
사건은 그 사람 다음에 생겼다. 여러 사건으로 모모는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진로 교사가 자신의 꿈을 짓밟아서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우겼다. 엄마까지 학교로 찾아와서 내 탓을 하며 교육청에 신고하겠다고 난리를 한바탕 쳤다. 어느 순간 나는 학생들의 꿈을 무참히 짓밟는 형편없는 교사로 전락하고 있었다.
3학년 된 형을 1학년 때도 내가 가르쳤기 때문에 형을 불러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형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형이 아무리 말을 하여도 전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끝까지 교사의 탓으로 돌렸다. 수업 중 내가 그 말을 할 때 모모 곁에 있었던 친구들을 불러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떻게 들었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친구들의 말도 모모는 안 들었다. 막무가내였다.
해결이 안 되고, 감정의 골만 깊어지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모모가 다른 학생의 휴대전화기를 훔친 사실이 드러나서 조용히 자퇴하고 학교를 떠났다.
지금 그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그런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학생들과의 대화의 방법을 많이 생각했다. 몇 권의 책을 사서 읽기도 하였다.
요즘은 학생들과의 문제가 생기면 담임선생님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같이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학생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고, 남자들의 사춘기 특성을 더 잘 알게 되어 학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말을 할 때도 상대방 마음을 콕 찌르는 말을 하는 대신 돌려서 예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 2016년에는 교사들과의 갈등이 있는 해였다.
00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대학교 진학을 위하여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아침 8시부터 8시 30분까지 ‘미래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방과 후에 운영하고, 여름방학 때는 오전 보충수업이 끝난 후 오후에 운영하기로 하였다. 1학기 내내 오전에 오던 몇십 명이 방학 때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학년에서 부장과 담임들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성적이 떨어진다고 못 가게 하였기 때문이다. 교사의 열정도 담임교사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그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줄여갈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계기로 지금은 프로그램은 운영할 때 아주 사소한 것도 학년 부장과 협의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학년 부장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 협조가 안 되어 프로그램을 운영한 효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운영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면 안 된다.
2018년 11월에 진로 교사를 초빙할 수 있다는 공문이 재직 학교로 왔다. 그 공문을 보고 진로 교사를 초빙한 학교를 찾아 서류를 제출하였다.
진로 교사가 되어 처음으로 기쁨을 느꼈다. 호흡하는 것이 편해졌다. 10년 만에 만나게 된 중학교 남학생들은 마치 아들 같았다. 아침에 학생들이 교실로 찾아온다. 여학생이 머물렀다 가기도 하고 매일 새로운 아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순수한 학생들이 많다.
3) 내가 만든 진로교과실에서
나는 식물 집사가 되었다가 엄마가 되었다가 아줌마가 되기도 한다. 혜성이가 요즘은 와서 물을 주고 있다. 코로나 19때 자가격리 하게 되어서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느라 학교에 오지 않으니 심심하였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사람은 안다고 혜성이가 어느새 보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좋아하는 음악과 수업에 필요한 유튜브를 큰 소리로 들어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 모둠 수업하고, 다양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서재의 역할을 하기도 하다. 소파도 있어 피곤하면 잠깐 누워 쉴 수도 있다. 가장 훌륭한 시설인 싱크대가 있다. 교장 선생님의 작품이다. 교실에 아마 수도 시설이 있는 교실은 내 교실밖에 없을 것이다. 수도가 있어 진로 시간이 즐겁다. 여기에는 없는 것이 없다. 냉장고, 프린터, 상담에 필요하다고 작년에 노트북 2대를 더 신청해 주었다.
여기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수시로 아이들은 들락거리며 놀거리를 찾아다닌다. 놀거리가 많다. 3D 펜으로 아이들은 물건을 만들어 보며, 그림을 그리고, 식물을 가꾸고, 식물 일기를 쓴다. 청소를 같이하기도 한다. 대화해야 한다. 말을 줄이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 장소를 좋아한다.
여기에 더 무엇을 원하겠는가? 지금 학교에서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쓰라린 경험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아니다.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학생들에게도 인권이 있다. 혼을 낼 때도 인권을 생각해서 부드럽게 혼을 내고, 여러 방법을 생각해서 찾아내야 한다.
작년에 커리어넷의 직업적성검사를 해 보았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니 예시가 필요해서 회원가입을 하고, 진로 심리검사를 하였다. 진로 심리검사 중 중고등학생용으로 직업흥미검사, 직업적성검사, 직업 가치관 검사 등 세 가지를 실시하였다. 직업적성검사 결과는 11가지 적성 능력 중 ’자기성찰 능력‘이 가장 높게 나왔다. 자기성찰 능력이란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자원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결과지에는 ‘제 생각과 감정을 알고 감정 조절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며 결과에 대한 자기 책임을 잘 인정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성찰 능력이 아직도 나를 교단에서 머무르게 하는 힘이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들과의 관계는 특히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서서히 끊임없이 노력을 통하여 상대방을 대하면 결과가 나온다. 진정으로 선생님이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을 깨달은 순간 학생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가까이 다가왔다.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주기 위하여 진로 진학 상담을 하여 주고, 언제 찾아와도 화내지 않고, 그 말을 들어주고, 가끔은 간식을 내어주고, 특히 민겸이는 할머니께서 건강한지 물어보고,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하였다.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일이 발생한 원인을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서 찾기 시작하면서 삶이 나아지고 있다. 상황의 근본 원인이 나라고 생각하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찰이 필요하다.
나아가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