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으로 여행을 간다. 소소한 일상이 내 인생 최고 여행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리라. 가방을 싸는 것부터 비행기를 타는 것, 제주공항에서 집 가는 버스를 기다려도 소설의 중요한 소재처럼 움직인다. 아주 소중한 일상이다.
여행(旅行)은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행은 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놀러 가거나 외국으로 떠나야만 되는 줄 알았다.
고향을 떠난 지 35년. 일 년에 한 번 정도 갈까 말까 하며 살아왔다. 부모님 나이가 익어가면서 어느새 집에만 계시는 노인들처럼 살아간다.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간다.
집에서 나와 공항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걸려 김포공항에 도착한다. 늦을까봐 서두르다 보면 출발 시간보다 항상 1시간 정도 빨리 공항에 도착한다. 티켓에 적혀 있는 탑승구 앞에서 블로그를 포스팅하며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 비행기를 탄다. 대부분 창가 비행기 날개가 보이는 좌석이다. 열심히 하늘의 모습을 담는다.
작년 2월 서귀포 보목리라는 마을을 지나다가 바다 위에 더 있는 섬을 만났다. 섶섬이었다. 처음 만났다.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
섶섬은 서귀포시에서 남서쪽으로 3㎞쯤 떨어진 무인도이다. 각종 상록수와 180여 종의 희귀식물, 450종의 난대식물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섶섬이 너무나 아름다워 오래전부터 이 섬을 사랑한 화가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이중섭이다.
그는 1951년 자기가 살았던 초가집 뒤 언덕에서 잘 보이는 서귀포 앞바다와 그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섶섬을 그렸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종이에 유채로 그렸다. 가로 41cm, 세로 72cm.
늦은 가을 속 황토빛 초가집과 나무들. 저 풍경은 콘크리트 빌딩과 푸른 나무로 바뀌었다.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서서 앞바다 가운데 있는 섶섬을 보았다. 이중섭이 그때 아름다움에 넋 놓고 보았을, 그 모습 그대로 20대의 너처럼 아직도 어여쁘다.
내 인생 최고의 여행.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순간들. 그 나름대로 추억이 된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면 더욱더 우리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더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국내든지 해외든지 바다라면 제주도의 바다가 단연 최고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에 자꾸만 몸을 비비대는, 애머랄드빛 바다와 사계절 푸른 산과 겨울에도 꽃을 품는 들판과 밭, 돌담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만들어진 제주도의 올렛길도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풍긴다.
영국 여행 전문 매거진 <액티브 트레블러(Active Traveller>가 세계 10대 해안 트레일로 선정하여 “보물섬에서 왕관의 보석과 같은 길”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제주올레 루트는 해안선을 따라 깊고 푸른 바다와 섬 한가운데 솟아 있는 한라산의 끝없는 전망을 보여준다. 길을 지나면서 368개의 오름도 볼 수 있다.”라고 곁들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가보니 제주도가 더 좋아졌다. 그러다 만난 섶섬. 내 그리운 바다와 함께 섶섬은 혼자서 살아왔다. 작년 겨울 서귀포항구에 연결된 새섬에서 한라산을 쳐다보았다. 백록담에 제법 눈이 덮여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순간 숨이 막혀 죽을뻔했다. 어렸을 때부터 한라산을 사랑했다. 한라산은 건장한 남자처럼 항상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잡아줄 것 같았다. 고요한 눈빛으로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흐트러짐이 없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그대다. 나의 뒷배경처럼 서 있었다. 사계절 내내. 아침부터 잠잘 때까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제주도 남쪽에서 홀로 바다를 지키는 무인도 섶섬과 북쪽에서 홀로 제주도를 지키는 한라산은 서로 닮았다. 전생이 부부였는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항시 그리워하는 존재들. 아무런 푸념을 하지 않는다.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다. 화를 내지도 않는다. 태풍이 몰아치면 온몸으로 막아낸다. 따가운 한여름의 햇살도 온몸으로 받는다.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역할을 맡고 있다.
다른 나라의 아름다움이 아닌,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여행 작가가 되고 싶다. 사계절 따라 내가 좋아하는 자연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 두 눈으로 관찰하여 묘사하고 싶다. 제주도를 읽어주는 여자가 되려면 ‘물, 바람, 공기, 빛, 들꽃, 오름, 바다, 섬, 돌담길, 서귀포 칠십 리, 돌, 해안도로, 건축 등 무궁무진한 이 소재와 연결된 모든 것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머리에 담아야 한다. 늙을 일이 없겠다. 자연과 더불어 사니 그 얼마나 즐거울까. 생이 끝나는 날 자연인으로 아름답게 돌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