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사람을 외치다

by 과학자미뇽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알까기, 망까기 놀다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았던,. 놀다가 배고파지면 뒷산에 가 나무열매 따다 먹거나, 냇가에 가 개구리 잡아 꾸워먹거나 하던 그 때 그 시절. 그런 건 티비에서나 봤고, 1996년 출생 즉 ,MZ세대인 나 때는 말이다, 쉬는시간이면 교실 맨 뒷자리에 모여앉아 공기놀이 한 판, 수업시간이면 바둑판 달린 필통으로 오목두기 한 판. 그러다 점심시간 종 땡 치자마자 급식실 향해 숨가쁜 뛰달리기 한 판. 야간자율학습시간 땐 석식메뉴가 쫌 그르타 싶음 머리도 식힐 겸 피씨방 가서 게임 한 판 때리거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니 피자 한 판 사먹는다거나 하는 등등 뭐 놀거리나 먹을거리가 참 풍족한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그래서였는지 수능시험 또한 시원하게도 말아먹었다. 근데 내가 그렇게나 잘 놀아먹긴 했었어도 날로먹었던 건 아닌데. 학교수업은 물론이고, 국어학원이니, 영어학원이니, 수학학원, 과학학원까지 전 과목 다 빡세게 돌려가며 준비했던 수능시험이었는데. 평소받는 성적보다도 더 폭망해버린 성적표를 받다보니, 이제 내 인생도 망했다고 싶었다. 게다가 난 서울에서밖에 안 살아봤는데. 인서울은 고사하고 저기 저 강원도까지 가서 혼자 빨래하고, 청소하고 하는 기숙사생활을 하려니,그게 여간 빡센 일들이 아닌지라 많이 애먹기도 했다. 근데 그래도 여기도 참 살만하다 느낀 것은 많았다. 학창시절 땐 어디 놀러간다 해봤자 피시방이나, 노래방 같은 건전한 문화생활 뿐이었으나, 수능 끝난 고3의 대학생활은 생각보다 살만했다. 이 날은 이래서. 저 날은 저래서. 허구한 날 잡는 자유로운 술약잡기와 술게임놀이, 말술말기, 밤새도록 술까기 하는 등등의 여럿 신박한 첫 경험들을 맛봐서인지, 허망했던 기분이 좀 달래졌다. 그래서 그냥 그간 빡센 수험생활 버틴 머리 좀 식힐 겸, 일단 이거 딱 한잔만 하고 이제부터라도 잘 해 보자 하고 다시 한 번 굳게 마음먹어보았다만, 그러자는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 되고, 석 잔이 넉잔으로 술술 넘어가 넉다운 됐다 눈 떠보니 군대였다.


군대. 그곳은 정말이지. 여지껏 겪어보지 못했던 빡센 세계였다. 지금 시간이면 한창 술먹고 꿀잠 자고있을시간인데. 신병훈련소에선 술도 못 먹어, 담배도 못 펴, 칼같은 제식훈련과, 총같은 사격훈련과, 족(足) 같은 행군훈련으로만 진행되는 빡센 훈련소생활인 데다, 참으로도 빡빡한 훈련소였을지라도 그곳은 너도나도 다 계급같은 동기라서 아무리 힘든 훈련들이 건 간에 우리 같이 동기 사랑 나라 사랑! 하며 서로 으쌰으쌰라도 할 수 있었으나, 진짜 군대는 자대부터였다.


“제 2작전사령부 제 50보병사단 청송대대”

내가 배치받은 부대였는데, 뭔가 작전이고 대대라고 하니까 여기 막 “진짜 사나이”에서나 본 것처럼 저기 강원도 최전방에 있는 험준한 산지에서 산 타고, 물 타는 빡센 곳이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곤 했다. 근데 그런 거 없었다. 주왕산, 방광산, 보현산, 팔각산. 사방팔방 산으로 둘러싸인 곳은 맞는데 진짜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청송군. 그곳에 위치한 청송대대.대대라곤 해봤자 정원 70명 정도로 작고 아담한 소규모 부대였던 청송부대에는 살벌한 지뢰밭은 없었다. 그냥 달달한 사과밭 뿐이었다. 그러한 청송에서 하는 작전이라고는 농번기에 일손 부족한 사과농장에서 사과 따고, 닦고, 상자에 담는 대민지원. 끝나면 진지보수 한다고 흙삽 들고 제초작업. 끝나면 비가 오니 물삽 들고 배수작업. 끝나면 눈 내리니 눈삽 들고 제설작업처럼 상당히 귀찮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힘든 일은 없었다. 게다가 청송부대 자체가 예비군훈련장으로 지어진 곳이라서 분기마다 동원훈련 하러 오는 예비역 아저씨들 가라쳐주는 조교 역할이나 하는 것 외엔 딱히 할일도 없었다. 한마디로 청송부대는 진짜 꿀이었다. 다만, 민간사회나 군인사회나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러했듯이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보단 그 일을 같이 해야만하는 사람이 더 빡셌다. 그것은 군대. 그중에서도 육군.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그 모든 지역으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빡센 인간군상들의 총집합소인 육군이란 곳은.. 그야말로 컬쳐쇼크니까.


일단 맞선임 사상부터가 상당히도 빡셌고, 그 맞선임의 선임은 엄청나게 빡빡했고. 그 맞선임의 선임의 선임은 매우 잘 빡치는 성향이었는 데, 막 이거 하라 해서 이렇게 했구만 왜 이따구로 했냐 털려. 저거 하라 해서 저렇게 했구만 왜 저따구로 했냐 털려. 근데 그렇다고 또 이것도 저것도 안 하고 있으면 뭐 하냐? 선임은 일하고있는데 놀고자빠졌냐? 하, 참 군대 미쳐 돌아가네, 자대 오니깐 군생활 편하지?라고 물음하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고 대답하면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냐?", "죄송할 짓을 왜하냐?" 되물으니 "죄송..! 아.. 아니, 제가 경솔했습니다! 몰랐습니다!" 대답하면 모르면 군생활 끝나냐고 탈탈탈탈 털리는 곳이 군대다 보니. 이렇게 해도 털리고, 저렇게 해도 털리는 청송부대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내가 먼저 털어야만 했다. 그것이 막 선임이고 나발이고 걍 다 강냉이 털어버렸다는 건 아니고, 아무리 사격실력이나, 작전수행능력이 뛰어난 병사라 한들 그것은 국방부에서나 잘 보일 일이지, 진짜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시간 흘러, 전역 할 때까지 같이 사과 따고, 풀 뽑고, 배수로 뚫고, 얼음 깨고 하며 부대껴 생활하는 청송부대원들에겐 그저 그런 일일 거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친구랑 서든 한 판, 코노 한 판, 폭주 한 판 뛰던 학창시절과 한창시절의 그때, 그 느낌으로다 싸지방에서 스타 한 판 중인 맞선임에겐 “와, 판을 읽는 이 전략, 이 전술,이 운영, 이거시 맞선임님의 선구안..! “, 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 뽑는 맞선임의 선임에겐 “캬, 진짜 성대에 꿀 바르신 겁니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아주..”, 생활관에서 티비 보고 있는 맞선임의 선임의 선임에겐 “ 맞선임의 선임님의 선임님 없었음 군생활 진짜 힘들었을 텐데.. 이리 청송대왕님이 존재하시기에 이곳은 선진병영..!” 하는 싸바싸바로 이 선임이고, 저 선임이고 일단 보는 족족마다 입부터 쪽쪽 털어가며 하는 칭송생활. 비록 사격은 빗나갈지언정 우리 청송대왕님들 기분은 반드시 맞출 수 있도록 싹싹하게 입털며 하는 충성생활. 그렇게나 입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깍듯이 입털어가며 열심히 충성하다 보니, 어느새 선임이고, 후임이고, 동기고 뭐고 할 것 없이 그냥 형, 동생 친구처럼 같이 싸지방 가서 열겜 하거나, 노래방 가서 열창 하거나, PX 가서 폭식 거나하게 털어먹음과 후에도 같이 외출이니 외박, 휴가날짜 맞춰 이 형 동네서 피씨방 한 판. 끝나면 저 친구 동네서 노래방 한 판. 끝나면 우리집 가서 “전우 사랑, 나라 사랑!” 술자리 한 판 알큰하게 벌여가는 청송생활이란, 한마디로 놀자판이었다. 근데 군대생활이 참 재미있었다고 해서 또 하라면 못 하듯, 아무리 군대가 밥도 줘, 옷도 줘, 집도 준다 한들 진짜 우리집만 할까. 게다가 사회생활에서도 그러하듯, 참말로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참으로도 안 맞는 사람 다 있기도 한 군대인데. 그 모든 사람, 사람들한테 맞춰가는 것은 여간만 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매일매일을 간절히도 이거 제발 얼른 끝내고 우리 집가서 푹 쉬고 싶은 전역날만을 손꼽아가며 빡시게 삽질하던 나날들이던 와중. 정말 기적이 벌어졌다. 그것은 한참 얼타고 있던 이등병을 털고 일어나, 한창 열라게 뛰며 삽질 하고 있을 일병을 뛰어넘어, 이제 상병 달고 짬차게 될 시기에 민간사회로 넘어오게 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역은 아니었다.


“현역부적합심사”


그것으로 현역에서 보충병, 즉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몰랐다. 막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신경쓰이는 일들엔 머리가 아프고, 계속 삽질하다 보면 피곤도 해지곤 했다. 근데 뭐 이런 것들은 사람이라면 다 그런 걸 거고, 아무래도 민간인보단 빡센 군인이다보니 더 그럴 거라 생각해서 그러했었던 증상들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훈련소 때 사격훈련 한 이후부터 귀가 잘 안 들린다곤 말했다. 근데 청송병영 내 의무대도 가 보고, 국군수도병원 외래도 가 보고, 청송대대장님이 얼른 병원가보라 병가도 내주셔서 민간병원들에서도 진찰받아봤다만. 사격훈현 후에 더 먹먹해졌겠다, 이게 그냥 총 쏜 후 귀문제로만 알고 여기저기 이비인후과만 찾아다녔다 보니, 스트레스 줄이고, 약 먹고, 물 많이 마시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낫는 돌발성난청소견만이었고, 그게 그리 위험한 병은 아니라 해서, 나도 뭐 귀 한 쪽 쯤 잘 안들리는 거야 그리 대수롭진 않기도 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잘 지내봤었다. 하지만 이게 나아지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원인모를 청력저하는 더욱 심해져가는 탓에 끝끝내 현역부적합 판정을 받고 오게 된 도봉산역 공익생활이란 진짜 개꿀이었다. 비록 싸지방이 없지만. PX도 없지만. 봐야할 업무란 그냥 역장님, 주임님, 공익님덜 주인님 모시듯 깎듯이 입터는 것 외엔 딱히 뭐 할 일도 없지. 아무 일도 안 하고 논다고 누가 뭐라 할 일도 없지. 다디단 꿀 같은 근무시간만 때우면 퇴근 후엔 피씨방에서 열겜 한 판. 끝나면 노래방에서 열창 한 판. 끝나면 술자리에서 폭주 한 판 하기 등등 그 어떠한 문화생활들 다 마음편히 만끽하며 이제 모든 국방의 의무 끝마칠 전역날만 코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민원들 응대하고, 승강장 플랫폼들 순찰하던 도중이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민원 오는 사람들이, 순찰 돌 때 사물들이. 전부 핑핑 돌며 2개로 보이는 것이었다. 근데 처음엔 그리 큰일은 아닌 줄 알았다. 그냥 빡센 민원들 응대하다보니까. 달달한 꿀무지 순찰 돌다 보니까. 하도 밤새워 술잔 돌려 놀다보니까 몸이 쫌 피곤한갑다 하는 정도였다. 다만 근처 약국에서 약도 타먹어보고, 충분한 수면으로 취해도 보고, 며칠을 금주까지 해보곤 해도, 몸은 계속 뻐근해오지. 귀는 계속 먹먹해지지, 눈도 계속 침침해져가는 게 진짜 이상하다 싶어 동네 안과고, 내과고, 이비인후과까지 돌고 돌아 가봤는데. 결과는 같았다. 여기서는 안 된다,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였다. 그래서 이 큰병원에도 가보고, 저 큰병원에도 가봤는데. 결과는 같았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댔다. 이미 너무 커져버렸다는 말과 함께 진단된 병명.

“신경섬유종 제2형”


난생처음 들어보는 소리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 말그대로 신경마다 자라는 종양인데,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간의 이유모를 청력저하와 피로감, 두통, 시각이상의 원인은 뇌종양 때문이라랬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많이 놀랐다. 그냥 요즘 너무 놀아서 생긴 술병이나, 눈병이겠거니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다가 살아왔건만. 뇌종양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중병이라서였다. 근데 그래도 그때까지는 아직 희망은 잇었다. 요즘은 암도 치료되는 시댄데, 뇌든 뭐든 그냥 수술하면 나아지겠지 생각해서였다. 근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종양이 단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척수와, 뇌수막엔 좁쌀만한 종양이 자잘해있고, 좌뇌, 우뇌엔 사과크기만하게 커버린 종양들이 나의 뇟속에 가득히도 들어차있어서였다. 그래서 이만한 종양들을 모두 제거하긴 어렵고, 그렇다고 수술을 안 한다면 그대로 죽고, 그래도 수술을 하게 된다면 그게 잘 되든 안 되든 일단 “청력은 잃을 겁니다. 시력과 보행도 지금같이는 힘들 거고요. 현재로선 이게 최선입니다.” 하고 예후된 소견을 들어보니, 이제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근데 그래도 진짜. 진짜.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하고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보기도 하고, 이 병을 투병중인 이 사례와 저 사례들 찾아보고도 해봤는 데. 결과는 같았다. 누군가는 시력을 잃었고. 누군가는 청력을 잃었고. 누군가는 얼굴을. 누군가는 팔을. 누군가는 다리를. 사람마다 정도는 달랐지만, 그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장애들을 갖게 된 걸 봤다. 그래서였을까. 이젠 보이지가 않았다. 더는 들리지도 않았다. 꿈도. 희망도. 미래도. 이젠 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건강한 몸으로도 뭐 하나 제대로 못 해 본 나였는 데. 이제 이런 장애들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난, 도무지 살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그렇게 이제는. 앞으론. 더 이상. 할 수 없을 거라고 절망했을 때. 그 때. 내 세상은 끝이 났다. 그렇게. 죽었다. 근데. 살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살만했다. 예후대로 귀는 안 들렸다. 눈도 잘 안 보여졌다. 예전 만큼 몸이 잘 안 들어졌다. 그렇지만. 그런대로 살아졌다. 들리지는 않더라도 문자로 읽게 해주는 음성텍스트 기능. 그게 잘 보이진 않더라도 확대시켜 보여주는 대형모니터 기기. 게다가 위험했던 뇌수술도 잘 끝났고, 미처 제거하지 못하고 남은 종양들은 막 머리 열고, 칼로 째고 할 것 없이 그냥 레이저치료 한 방 쬐어 끝내주는 최첨단 의료기술까지. 비록 정도가 심한 중증장애는 남았다곤 한데. 끝이 아니었다. 이 사례든, 저 사례든, 찾고자 하는 모든 건 다 나오는 21세기. 그러한 기능, 기기, 기술들이 있는 이곳에선 못 할 것이 없었다. 손에 쥔 핸드폰 한 대. 집에 있는 컴퓨터 한 대. 그것들은 국어학원, 영어학원, 수학학원, 과학학원들 오가곤 했던 예전처럼 직접 재수학원까지 다니지 않게 해줬다. 국어니, 영어니, 수학이니, 과학 같은 자료들은 다 나오는 컴퓨터로 하는 재수생활이었고, 휴대폰으로 주문한 런닝머신이니, 고무밴드니, 에이비슬라이드 같은 운동기구들로 하는 재활생활도 잘 끝마칠 수 있었다. 다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더 공부해야만 했다. 더 운동해야만 했다. 더, 더, 더 잘 해야만 했다. 누가 막 칼 들이밀고 협박한 건 아니었다. 누가 막 총 겨눈 채 위협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 혼자만 하는 생각일 뿐이었다. 더 공부해라. 더 운동해라. 그 누구도 뭐라 한 적은 없더라도 모두가 다 보고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베었고, 쏘았기 때문이었다. 칼은 아니었다. 총도 아니었다. 어쩌면, 칼보다 더 날카로울 수 있는 거. 총보다 더 깊게 박힐 수도 있는 거. 그러한 말들로 인터넷에 내뱉는 악플들로. 누군가들에 퍼붓는 악담들로. 그러했던 막말들로. 그렇게 끝내버린 끝이라서. 그래서. 난. 잘하는 걸 잘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못하겠는 것도 못해서는 안 됐다. 그래서 다 말해야 했다. 분명하게. 정확하게. 나는 잘못한 사람임을 말해야 했다. 왜냐하면 아무 일도 없었듯 내 잘못을 묻어도, 그 누군가들은 다 알고있으니까. 근데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말해도 안 됐다. 내가 내 잘못을, 잘한 듯이 말하는 나를 보면. 그 누군가들은 더욱 분노하게 될 테니까. 그럴 거라 생각해서. 말하는 단어 하나. 말하는 표현 하나. 그 모든 상황 하나, 하나까지 모든 걸 다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했다. 그런데. 맞았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잘못한 사람들에게 말도. 행동도 당연히 잘 해야 되는 것이었다. 근데 그건 내가 잘못한 사람들 한해서였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대체 내가 뭐 때문에.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고, 앞으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들에게.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그 누군가들한테까지조차 이토록이나 잘못한 사람처럼 죽은 듯 살아가야 한다는 게. 그렇게 사는 게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누구도 그걸 감당하라 한 적은 없었다. 그냥 나 혼자만 하는 생각일 뿐이었다. 만약에 잘 못 말하면 누군가들에 털리는 건 아닐까. 만약에 이 말이 부적합 해서 누군가들에 밉보이지나 않을까. 만약에 그렇게 되면, 이 사회에서 매장되는 건 아닐까.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끝도 없이 떠오르는 수없는 만약에들로. 말할 단어 하나, 표현 하나, 최악의 상황까지 하나, 하나 고심해가는 거. 혹시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생각들까지조차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한 명 한 명 고려해가야만 하는 거. 뭘 하고자 하든 일단 그걸 볼 타인 시선부터 맞춰 살아야 하는 그 모든 것들까지 전부 다. 그거 진짜 사람 할 짓 못 되었다. 근데. 그렇게 되졌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나를 미화함으로 끝냄 없이. 남을 미워함으로 끝냄도 없이. 그렇게 말이 해졌다. 그것이 진짜 뒈지고 해지게 힘들긴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졌다. 그게 막 인간이라면 느껴야할 양심만은 아니었다. 인류에게 베풀어야 할 인류애도 아니었다. 나라 위해 바쳐야할 애국심도 아니었고, 그건. 그저. 그냥. 내 사람이라서였다.


맞았다. 다 맞았다. 너 잘한 거 없다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말해줬다. 그래서 잘해졌다. 이제부턴 진짜 잘했든 못 하겠든 간에 그저 잘했다고 말해줘서. 하는 게 잘 안 되고, 못 됐든 간에 그냥 잘됐다고 말해줘서. 초등학생 떄.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 그 어느 때. 같이 초딩마냥 놀던 소꿉동무들. 그리고 이런 날이든. 저런 날이든. 그저 그런 날이든 간에 일단 "동기 사랑 나라 사랑!" 외치며 술 한 잔부터 적셔 놀던 대학동기들. 그리고 이렇게 또, 저렇게 또, 그렇게나 삽질해댔어도 그냥 훌훌 털며 놀던 청송전우들. 그리고 우리 아들뻘인 얘들 편하게 꿀빨라고 할 일 없는 업무 편의 크게 봐주신 역장님. 그리고 아이고 싹싹하기도 하지, 우리 사윗감 삼고 싶다며 밥 잘 사주시던 주임님. 그리고 우리는 사회복무요원이므로 같이 열심히 꿀빨던 도봉산요원들. 그리고 아니, 무슨 헬스트레이너냐고, 몸이 왜 이렇게 빡세졌다며 뿌듯해해주며 놀던 재활선생님. 그리고 와, 우리 딸도 거기 지원했다 재수중인데, 참 잘했다며 토닥코닥해주는 의사선생님. 그리고 강의실 간 휠체어 끌어주던 이동도우미님. 그리고 강의내용 적어주시던 타이핑도우미님. 그리고 강의 끝났는 데도 밥사주러 보충식사 사주시는 교수님. 그리고 술잔 원샷 대신 "동기 사랑, 나라 사랑!" 외치며 같이 단체샷 찍으며 놀던 한양대원들. 그리고 아직 더 말할 순 있지만 한마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수없이 좋은 사람들까지. 그만큼 소중한 내 사람들이 있어줘서. 나는, 내가 잘못한 사람들에게도. 내가 잘못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더 이상은 못다하겠을 사람처럼 느껴진대도. 그게 다 그렇고 그랬건 간에 그냥 다 잘해지게 됐다. 근데 여전하게도 못 하는 것은, 청소나 빨래 같은 일상적인 집안일들. 학창시절 때나, 한창시절 때나, 군대시절 때와 그리고 지금 이 때까지조차도 내 방 청소니, 내 옷 빨래 같은 빡센 일들은 너무나도 귀찮아서 곧잘 난장판으로 털리고는 한다. 근데 그건 진짜 어쩔 순 없다. 처음부터 난 그렇게 태어났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이거다.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나서. 내 꿈. 내 희망. 내 미래. 내 의미. 내 이유. 내 세상. 내 존재의의 그 자체이자,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엄청, 매우, 되게, 매일, 평생, 제일, 가장, 많이,사랑하는 내 가족이라서. 우리 가족이란 진리 그 하나만으로, 내가 잘못한 사람들에게도, 내가 잘못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저 그냥 다 잘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 지금, 여기, 이 대한민국 땅 위엔 내 사람들과, 내 가족들과, 내 사람들의 사람들과, 내 가족들의 사람들 모두가 다 존재하고있으므로, 기기, 기능, 기술, 그 어떠한 형태로든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주시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저 또한 제가 할 수 최선으로, 국가와 국민의 공익을 위에 충성을 다할 것을 깍듯이 선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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