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대로 들을래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by Miranda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오래전 이야기이다.

대학을 입학하고 첫 아르바이트를 대형 마트에 입점되어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시작하였다.


바닥청소, 테이블 닦기, 쟁반 닦기

음료수 뽑기, 커피 내리기, 소프트 아이스크림 예쁘게 뽑기

감자튀김 튀기기

드디어 계산대에서 주문받기


마치 게임 레벨업 하듯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갔다.

마지막 단계인 햄버거 만들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어 아직도 아쉬운 마음이다.


주말이 되면 다음 주 근무표가 나와서 시간에 맞춰 일을 하러 갔는데, 그날은 오프라고 불리는 마감업무시간에 일을 하게 되었다. 시급은 같이 받아도 마감업무는 일이 좀 더 힘들어서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은 업무였다. 마감업무는 마무리 청소뿐만 아니라 주방에 있는 조리기구들 모두 세척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힘들었고, 또 마지막 손님의 유무에 따라 퇴근 시간도 변동이 있어서 여러모로 하기 싫었다.


그날은 모든 영업이 끝나고 내가 매장 바닥을 쓸고 닦고 하고 있었는데 잠깐 걸레를 빨고 온 사이에 마트에서 떡볶이, 순대 등을 사 온 아주머니 두 분이서 우리 매장에서 펼쳐 놓고 드시기 시작하신 것이었다. 다 쓸고 닦고 했는데 테이블은 기름으로 얼룩 졌고 바닥은 튀김가루가 놔 뒹굴고 있었다. 영업이 끝났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렸지만 청소를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마도 나는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그 시절 패스트푸드 매장에는 천장에 TV들이 달려있었고 음악방송이나 패스트푸드 광고들을 계속 틀어놨었다. 우리 매장은 동네 마트 안에 있어서 아주머니 손님들을 위해 인기 있는 드라마를 틀어놓곤 했었다. 그 시절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는 바로 "대장금"이었다. 그날도 대장금 하는 날이라 매장에는 대장금을 틀어놓았었고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더러워진 매장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TV 소리가 지지직 거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 TV가 지지직 거리며 잘 나오지 않았을 때 한 대 툭 때리면 잘 나왔던 그때처럼. 아니면 TV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어 모든 방송이 끝나 지지직 거리고 있던 그 소리 말이다. ( 내가 어릴 때는 그런 소리를 종종 들었는데 요즘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TV가 고장이 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관리자가 TV를 끄겠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청소에 몰두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TV를 건드리지 않는 모양이다.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계속되어서 안 그래도 짜증이 나 있던 나는 그 소리에 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참다못해 고개를 들어 TV를 봤는데...............

화면에는 푸르른 산속에서 계곡에 물이 흐르고 매미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난 회색화면에 지지직 거리는 그 장면일 줄 알았다.)

주인공들의 대사는 없고 풍경이 나오던 장면이었는데 화면을 보지 않았을 때는 분명!!! 지지직~~~~ 거리는 소리였다. 그런데 화면을 보는 그 순간 더 이상 지지직 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쨍쨍한 여름날의 매미소리와 풀벌레 소리와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같은 소리를 들었는데

화면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소리가 바뀌었다.


아마도 나의 짜증 나는 감정이 반영되어 부정적인 소리로 들려왔던 게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일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내 귀로 직접 들었지만 그 소리가 아니었다니... 이제 내 귀도 못 믿겠네...

나는 그날 이후로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거나 직접 들은 게 아니면 더욱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또 다짐한다.


20살 때의 작은 경험이 아직도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면 적지만 큰 경험이었나 보다.


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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