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20-30대 때는 오랜만에 연락이 오면 대부분 결혼식 소식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울리면 "결혼하나 보네"라고 생각하며 연락을 받고는 했었다.
40대에 접어들자 오랜만에 연락이 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
좋은 소식으로 연락 올 일보다 안 좋은 소식으로 연락 올 확률이 많기 때문이겠지.
오늘도 정말 오랜만에 친한 선배가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섭다.
말을 꺼내길 망설이는 선배에게 겁나게 왜 그러냐며 얼른 용건을 말해 보라고 닦달을 해 본다.
나랑 동갑내기 남사친의 부고.
비록 오랫동안 연락하고 지내지는 않았지만 친구의 부고라는 건 슬픔의 종류가 다른 것 같다.
선배는 이런 일로 오랜만에 연락을 하게 돼 미안해했고 부담은 가지지 말라고 말했다.
소식은 전해야 할 것 같아서 연락을 준다며...
부담이라뇨.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고맙죠.
전화를 끊고 나니 흐르는 눈물과 함께
잊고 있었던 그 친구와의 추억이 모조리 다 생각났다.
다 같이 갔던 MT에서 둘이 소리 높여 싸웠던 일.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 친구의 생일 파티를 했던 일.
사주를 배웠다며 어설픈 실력으로 내 사주도 봐주고.
우리 남편과는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친구.
남편과 몰래 비밀 연애한다고 난리였는데 알면서도 모른 척해 줬던 친구.
우리 결혼식에도 와 주었는데. 결혼식 사진에 웃으며 서 있는 친구.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부고 소식을 알렸다.
남편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의 부모님 부고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다시 차근차근히 설명해 줬고 남편이 급한 일을 얼른 마무리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마지막 인사는 꼭 하러 가야지.
이런 글을 쓰는 게 맞나 싶지만
그리고 이 글을 볼 때마다 너무 슬프겠지만
내 좋지 않은 기억력으로 추억 속에서 친구를 지워버리기 싫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 줄 알았는데 다시 생생히 예전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잊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각인이 되어 있었던 듯하다.
젊은 날의 추억. 같이 술 마시던 그 분위기 모두 생생히 떠오른다.
지금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는 내가.
오늘 아침에도 피곤하다며 출근하기 싫다며 불평불만을 쏟아냈던 내가 이렇게 죄책감이 들 줄이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친구를 잊지 않는 것과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겠지.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202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