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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Aug 24. 2020

신의 일은 신에게, 나는 오늘에.

가끔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진행 중인 일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꼬이고 꼬여 있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건데 하는 후회와 함께, 

두 번의 생이 있다면 두 번째 생은 완벽하게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말도 자주 합니다.

내가 선택해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태어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먼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고민에 빠졌습니다. 

나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점검합니다. 

나라마다 물가와 경제 규모도 알아야 하고 사회 복지정책은 필수적인 확인 사항입니다.  

역사는 의식주 해결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며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의식주 해결이 우선이라면 사시사철 벗고 다니는 아마존 밀림 속 작은 부족 마을이 떠오릅니다.

외출복이나 행사용 옷이나 잠옷이나 별반 차이가 없고, 물가가 아무리 치솟아도 밀림의 숲이 다 해결해 줍니다.

과소비를 해도 온갖 열매와 과실은 남아돕니다. 

물건값이 오를 것에 대비해 사재기할 필요도 없고, 과실을 따로 저장할 저온 창고도 필요 없습니다.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 시, 밀림이 키우는 동물 몇 마리 사냥해 잡으면 손님 접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365일 외식도 가능합니다. 

밀림이 지구 상에서 가장 큰 뷔페식 식당이라 일 년 동안 잔치를 해도 음식이 남아돕니다.     


그러나 거의 벗고 사는 것이 꺼림칙합니다. 

밀림 속 온갖 해충의 표적이 되고, 얼굴과 가슴 등 온몸이 가시에 찔리고 찔러 성한 곳이 없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아프고 비위생적이라 밀림에 태어나는 것은 제외합니다. 

남극과 북극은 더위는 잊고 살겠지만, 불편한 대중교통과 21세기에 곰과 늑대와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현실이 만만치 않아 유럽이나 미국 쪽으로 눈을 돌려 봅니다.

걸핏하면 총기 사고가 일어나고 문화적인 차이를 내 DNA가 극복하기에 어려움이 많아 익숙한 한반도를 또 선택합니다.     


나라는 정해졌으니 어느 가문 어느 문중에 태어나야 하는지 또 심사숙고에 빠집니다.

대한민국은 인연, 학연, 우연 등 ‘연’ 이란 ‘연’은 다 갖다 붙이는 사회이고 그 수많은 ‘연’ 중에 혈연이 최고의 정점에 와 있습니다. 

2012년 상영한 윤종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최민식, 조직의 고문역), 최형배(하정우, 조폭 두목 역), 최주동(김응수, 검사역)은 최 씨라는 혈연 공동체입니다. 

영화의 장면 중에 혈연의 중요성을 잘 알려주는 최주동 검사의 대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만있자, 아! 그래 맞다. 느거 아부지 우리 형님의 할부지의 9촌 동생의 손자가 바로 최익현 씨 인기라, 한 10촌쯤 되는기라”     


10촌을 거리로 치면 1cm인지 100Km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혈연으로 똘똘 뭉쳐 사업(?)은 도와주고 죄는 덮어주는 끈끈한 정을 보여 줍니다.  

범죄 조직을 만들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혈연의 선택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부모님과 조상님께 죄송하지만 몰락한 왕조의 성을 버리고 최씨 가문에 태어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런데 최 씨로 살아가는 집안이 한두 집도 아니고 재산이 많은 집. 권력을 가진 집. 예술가의 집 등 어느 집에 태어날 것인지 또 고민입니다.     


첫 번째 생을 너무 가난하게 살아 재산이 많은 집안을 선택합니다. 

재산을 택했다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고 먹은 것도 없는데 헛배가 부풀어 오릅니다. 

좋은 집 좋은 차와 외국 여행도 마음껏 다니는 상상을 해봅니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양쪽 어깨를 툭 쳐 봅니다.


다음은 어느 지역에 태어날까 하는 문제입니다. 

시골과 중소 도시 아니면 대도시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결정됩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어 서울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서울도 어느 구에 태어나야 하는지 또 생각에 잠깁니다. 

새로운 삶은 행복 추구가 우선입니다.

소설가 조세희 선생님의 낙원구 행복동은 오래전에 재개발로 사라졌다 합니다.

강남 강북 서초 수도권 중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 또 선택, 하도 많이 해서 선택이란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매 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정확한 시장조사도 해야 합니다.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면 직접 현장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몸이 천 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고민, 선택, 시장조사, 검증으로 이어지는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러다간 다시 태어나는 게 1,000년은 걸리겠습니다. 

그냥 포기해야겠습니다.     


지금의 나에게 다짐합니다.

실패와 좌절이 두려워 도전을 망설이지 않으렵니다. 

세상의 벽이 높다고 탓하지 않으렵니다.

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오독에서 벗어나렵니다.    

너무 쉽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렵니다.    

생과 사는 신의 영역이니 신에게 맡기고 이번 생에 올인을 해야겠습니다.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신의 일은 신에게, 나는 오늘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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