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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Aug 24. 2020

삶에 실패가 이어지더라도 꽃 한 송이 피우겠습니다


“이 파일을 완전히 삭제하시겠습니까?”

“예! 머릿속에서 완전히 삭제되기를 바랍니다.”    


좋지 않은 일들을 하나의 폴더에 담아 휴지통에 보내려 합니다.

거침없이 ‘예’를 클릭해 머릿속 휴지통마저 지우려 합니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머릿속 모든 데이터를 지우고 새로운 운영체계를 설치하고 싶습니다.


좋은 일이 생길 때 화창한 날도 있었겠지만,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반대로, 삶에 실패한 날의 날씨는 내 머리가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이럴 때는 아인슈타인의 IQ를 능가하는 두뇌입니다.

아픈 기억의 파편들이 바이러스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취업 시험에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도 있었습니다. 

마치 어제 일처럼 그날의 날씨가 떠오릅니다.

햇빛이 엉덩이 살랑살랑 흔들며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대지의 꽃들이 서로 어깨 토닥거리며 나를 보고 낄낄거리며 웃고 있습니다. 

우울한 기분을 바닷바람에 씻어 내려 해변을 걷습니다. 

파도에 생긴 포말이 흰 이 드러내며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습니다.

만물이 웃고 있는 세상의 중심에 실의에 빠진 나만 홀로 서 있습니다. 


어제까지 사흘 밤낮으로 비가 내려 해와 달의 흔적을 깔끔히 지웠습니다. 

나의 실패를 영원히 묻어줄 것 같은 하늘이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세상의 중심에 나를 던져놓고 지켜봅니다. 

바람마저도 머리카락을 얽히고설키게 만들어 루저 loser의 모습을 완성하려 합니다.. 

사람들을 피하고 싶은데 횡단보도의 적색 신호등이 내 발목을 잡습니다. 

무작정 거리를 걸어도 허전함과 공허함이 떠나지 않습니다.

걷기를 포기하고 한 사물을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꽃, 꽃잎을 들여다봅니다. 자줏빛 제비꽃 꽃잎입니다. 

이 작은 꽃잎이 티끌 하나 없는 색을 어떻게 가졌을까.

저 색깔을 띠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을까.

피땀 어린 노력과 시간을 얼마나 쏟아부었을까.

단지, 시간만 지난다고 저 색이 완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긴 겨울을 맨몸으로 추위와 맞서 살아남았고, 적정한 일조량을 받기 위해 발뒤꿈치 세우고 해와 달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을 버티어 냈으리라. 새벽잠 설치며 작은 잎으로 아침 이슬도 받았으리라.

나는 시험에 떨어졌다는 결과에 붙잡혀 꺾인 꽃대처럼 고개 푹 숙이고 한낮의 중심을 피해 숨으려 했구나.


언제 어디서든 내 마음대로 꽃을 피우는 식물을 꿈꾸었나 봅니다. 

그런 식물이 지구 상에 존재하겠습니까?     


꽃을 피우는 세상 모든 식물을 닮으려 합니다. 

나만의 꽃으로 피우겠습니다.

삶의 짙은 향이 담긴, 

시간과 노력으로 피는 꽃, 

실패가 이어지더라도,

기꺼이, 꽃 한 송이 피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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