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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Aug 26. 2020

세상과의 관계가 끝날 때까지

편한 어머님의 탯줄 같은

시 공부에 푹 빠졌을 때 시와 문학 관련 대화가 아니면 끼어들기 싫었습니다.

그런 자리에는 아예 참석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식사 중이거나 걸어가면서도 오로지 시만 생각했습니다.

장소 불문하고 마음이 시를 잡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에 멍 때리는 모습입니다.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시를 온종일 찾아다녔습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사람과의 만남에서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편해집니다. 물론 시 공부 이전에도 지인들과 모임에서 대화를 이끌어가는 능력을 갖춘 건 아닙니다. 자주 보는 친구나 매일 대하는 직장 동료는 공통의 관심사가 존재하고, 축적된 이야기의 재료들이 쌓여 있어 대화가 끊기지 않습니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른 견해 차이에 대해 서로 피드백을 해주기도 합니다.     


한 번은 길에서 우연히 친구 부부를 만나 근처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서로 근황을 묻고 잠시 후 친구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나와 친구의 아내 둘만 남았습니다. 언어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난 기분입니다.

어색함이 탁자 위에 앉아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할지, 죄 없는 냉수만 마셨습니다.

나는 부부가 화장실에 함께 갔으면 했습니다.

친구의 관점에서 부부가 동시에 화장실에 가는 것은 실례라 생각했나 봅니다.

침묵이 자리 잡을 틈을 주지 말아야 하는데, 이미 늦었습니다.

아들 집 찾아온 시어머니처럼 거실에 퍼질러 앉아 자리를 잡았습니다. 친구의 가슴 아픈 첫사랑을 이야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 첫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집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생뚱맞게 시와 문학 관련 이야기를 할 수도 없어 친구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대화의 방법이나 테크닉 관련 서적을 읽어 보았지만 읽어만 보았다고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개그맨도 웃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무한정 가지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재능이 없으니 불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렇다고 친구의 아내와 정치 얘기를 할 수도 없고 고작 한다는 말이.    


“날씨가 많이 추워졌지요?”  

“네”    


힘들게 꺼낸 내 물음에 돌아온 단답형은 나를 더욱더 난감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건조한 대화는 백 년 만에 닥친 최대의 가뭄처럼 분위기 쩍쩍 갈라집니다.

상대방이 아무 말이나 해도 들어줄 자세가 되어있는데 말입니다.

환절기에 조심해야 할 사항을 하나라도 말하면 대화가 꼬리를 물고 풀릴 텐데 하는 생각에 상대방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나도 말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은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호의적으로 물어옵니다.    


“쉬는 날 뭐 하고 지내세요?”

“잡니다.”    


귀찮다는 듯이 툭 던지는 단답형입니다.

모처럼 말을 걸어온 상대방이 머쓱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 친구는 한동안 말을 걸어오지 않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나와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관계를 찾아 떠납니다.    


세상이, 사회생활이 관계로 이어져 관계로 끝납니다.

가장 안전한 관계는 어머니와 연결된 탯줄입니다.

탯줄을 끊는 순간, 세상과 새로운 줄이 연결됩니다.

그 줄은 수없이 생겨났다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사회관계망을 구축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SNS)가 생겨

인간을 더욱더 복잡한 관계에 묶어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전원을 Off 하더라도 Off-line 관계는 계속 이어집니다.

더는 관계를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관계를 잘 맺는 것이 자산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서툴더라도 물음에 진지하게 답하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모습을 보이려 합니다.

이 세상과의 관계가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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