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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May 14. 2021

수첩

최성철

수첩

   최성철     




누구나 살아 숨 쉬는 수첩 하나 가슴에 품고 산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끊임없이 기록된다

물 낯에 새기거나 바위에 새기거나   

수백 수천 번 머릿속에 새기거나 

그대는 내 수첩을 수시로 뒤적이고 

그림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사녀의 기도 아래

나는, 우둔한 연필로 또박또박 받아 적는다

언제 연못에 탑 하나 세울지 모르지만

온갖 불순물이 섞여 있는 세속을 다듬는

금강석을 꿈꾸기도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승은 가속도로 달아나고

늘 허기진 걸음걸이는 힘에 부친다

서로 사랑한 수첩은 너무 쉽게 지워지고

지웠다는 그 기억마저 지워져

단 한 줄의 여백으로 남고 싶을 때가 있다

읽어도 읽어도 해독 불가한 수첩을 버리고 

아예 새로운 수첩을 사려는 성급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쩌라 

처음 글 배우듯 느릿느릿 가다 보면

내 생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맑고 투명한 수첩 하나    

팔짱을 끼고 한 장 두 장 넘기며 걷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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