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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42. 감정은 손님이다

by 걍보리

감정은 손님이다. 감정은 ‘나’가 아니다.

감정이라는 손님은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가 때가 되면 홀연히 떠나는 존재다. 어떤 손님은 바로 떠나고 어떤 손님은 오래 머물다 떠난다. 나를 즐겁게 하는 손님도 있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손님도 있다. 나를 즐겁게 해 주는 손님은 붙들어 두고 싶고, 불편하게 하는 손님은 빨리 보내고 싶다. 그러나 손님은 ‘나’가 아니기에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간다.

즐거운 손님만 초대하고 싶지만 묘하게도 즐거운 손님은 혼자 오지 않는다. 불편한 손님과 손을 잡고 오는 경우가 많다. 즐거운 손님의 목소리가 크면 불편한 손님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편한 손님이 목소리를 죽이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불편한 손님의 목소리가 크면 즐거운 손님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즐거운 손님이 자기 발언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삶은 참 역설적이다. 즐거운 손님이라고 할지라도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지면, 어느 순간 불편한 손님으로 변해 심신을 피로하게 한다. 이와 반대로 불편한 손님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진실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불편한 손님이 가르쳐주는 깊은 통찰에서 내밀한 기쁨이 우러나오기도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즐거운 감정이라고 해서 마냥 끌어당기고, 불편한 감정이라고 해서 함부로 밀어낼 일도 아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참 지혜로운 말이다. 감정이라는 손님도 그러하다. 감정은 내 뜻대로 오고 가지 않는다.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지체 없이 떠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는 감정 막지 않고 가는 감정 붙들지 않아야 한다. 감정을 오가는 손님으로만 대해야 한다. 감정이라는 손님을 만나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감정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

긍정적인 감정이건 부정적인 감정이건 모든 감정을 내 세상을 찾아온 귀한 손님으로 대해야 한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찾아올 때는 찾아올 만한 까닭이 있었기 때문이고, 떠나갈 때는 떠날 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입을 닫고 귀를 열어 감정이라는 손님들이 내게 하려는 말을 잘 들어 보자. 기쁨의 말을 귀담아들으면 나의 내면에서 기쁨이 더 늘어날 것이다. 분노의 말을 경청하면 내가 미처 몰랐던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

한 대학원생이 면담을 요청했다. 때가 되어 학위 논문을 쓰려고 하는데, 남편이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고 예전과 다르게 자꾸 화를 내서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도움을 주어야 할 상황에서 도움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방해를 하니, 화가 나고 도무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물었다.

“선생님이 남편에게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이죠?”

“저를 도와주지 않고 방해하니까요.”

“남편이 선생님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도 궁금해요. 남편이 화를 내면서 대는 이유란 것이 정말 하찮고 사소한 것이어서 답답해요.”

“선생님의 화 이면에 ‘도와달라는 호소’가 있는 것처럼, 남편의 화 이면에도 ‘도와달라는 간절한 호소’가 있지 않을까요? 남편이 말하는 피상적인 이유 대신에,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을 수 있는 그 호소를 한 번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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