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숲길에서

44. 하거나 안 하거나

by 걍보리

“혹시 담배를 가지고 계신가요?”

“아니오.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아, 그런가요? 담배를 끊어보려고 애를 쓰는데, 잘 안 되네요.”

“왜 담배를 끊으려고 애쓰세요? 그냥 안 피우면 되잖아요!”

“네? …….”

지난해 8월 나는 동생들과 함께 제천 덕동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갔다. 펜션 주인은 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걸 보고 나도 담배를 피울 것이라고 짐작했었던 모양이다. 당시 펜션 주인은 금연(禁煙) 중이었다. 다른 사람이 담배 피우는 걸 보자 불현듯 흡연 욕구가 되살아난 것이다. 주인은 나를 만나자마자 담배를 부탁하였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금연을 시도하였다. 가지고 있던 담배를 한꺼번에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하고, 니코틴 패치 껌 사탕 등 금연보조제를 사용해 보기도 하였다. 노력은 허망하였다. 술을 마시거나 흡연자 곁에 있으면 금연결심은 깨졌다. 온갖 핑계를 대면서 담배를 다시 피웠다. 그는 금연을 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나는 펜션 주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흡연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담배를 통하여 중독의 위험성과 금단증상이 어떤 것인가를 알았다. 흡연의 문제점은 고등학교 시절 처음 담배를 손댔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담배 특유한 맛과 흡연할 때의 기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울적할 때 담배를 피웠다. 위로받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그림을 볼 때, 감각적인 음악을 들을 때, 멋진 풍광(風光)을 볼 때 담배를 피웠다. 감동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들이 흡연을 정당화해 주었다. 설령 건강을 조금 잃더라도 그 순간의 기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훗날 딸이 태어났다. 또 강단에서 다수의 학생들과 만나면서 살아야 했다. 흡연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양치질을 열심히 해도 입에서 나오는 담배냄새를 없앨 수 없었다. 양복주머니와 몸에서 배어나는 담배냄새를 근절할 수 없었다. 담배가 아예 없는 상황이 아니면 결국 아이나 학생은 담배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펜션 주인이 했던 시도들을 해 보았었다. 모두 실패했다. 담배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만 담배를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다. 담배회사는 여전히 담배를 생산하고 흡연자는 곳곳에 있다.

나는 담배중독자였다. 뇌는 담배의 맛과 향기와 분위기를 기억하였다. 담배의 노예였다. 중독(中毒)과 집중(集中)은 대상에 몰입(沒入)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독은 자율적인 조정이 어려워 심신과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집중은 의식적이고 자율적인 조정이 가능하며 학습이나 작업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제공한다. 중독의 질과 형태는 다르지만 술 약물 야동 도박 인터넷 중독들은 심신과 일상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나는 담배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생각해 보았다. 누가 내게 흡연을 강요했는가? 그런 사람은 없었다. 순전히 나 스스로 담배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담배에서 벗어나면 되지 않은가? 어떻게?

나는 담배와 싸우지 않기로 하였다. 무시하기로 하였다. 담배에 대한 충동과 기억을 억지로 피하지 않기로 하였다. 뇌나 몸의 기억과 실제 담배는 별개의 것이다. 기억은 기억이고 담배는 담배다. 생각과 행위도 별개다. 욕구가 생긴다고 해서 반드시 욕구를 따라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거나, 안 하거나’는 선택의 문제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피우는 사람이고, 안 피우는 사람은 안 피우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으로 규정하였다.

‘예전의 나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담배로부터 해방되었다. 담배와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되었다. 담배와 연관된 일체의 생각과 기분과 충동을 오가는 바람으로 여겼다. 담배와 싸우면서 금연하려고 애쓰는 대신에, 마치 내 세상에는 담배가 없는 것처럼 생활하였다. 담배를 남의 세상 일로 여겼다. 담배를 내 세상에서 추방하였다. 저절로 금연이 되었다. 단순함의 힘을 느꼈다.

‘그래그래. 지금 내 세상에는 담배가 없어.’

‘안 피우면 그만인 것을.’

어디 담배뿐이겠는가? 술도 게임도 마찬가지다. 복잡해 보이는 것도 곰곰이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생긴 경우가 많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더 많이 챙기기 위해서, 분노를 삭이지 못해서, 거짓을 가리고 변명을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실상은 간단한 것이거나 허망한 것일 수 있다. 결단하면 간단하다. 편안하다. 선택하고 집중하면 그만이다. 하기로 했으면 하고, 안 하기로 했으면 안 하면 된다.

‘하거나, 안 하거나.’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숲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