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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Apr 09. 2023

너는 내 세상이다

30. 원하지 않은 결혼

  어느 날 장모님이 살아온 이야기를 아내의 말이 아닌 장모님의 말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다. 함께 나물을 다듬으면서 말을 꺼냈다.

  “장모님, 그 당시에 장인과 결혼을 하고 싶으셨어요?”

  “아니, 싫었어.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 아저씨 같은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은 젊은 처녀가 어디 있겠어?”

  “나이 차이가 얼마나 되었는데요?”

  “아마 14살 차이였지. 정말 싫었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14살 나이차는 분명 큰 차이다. 20대 초반의 처녀가 사십 세가 가까운, 얼굴도 모르는 어른에게 시집가는 것이 싫었을 것 같다.  

  “그럼 확실하게 ‘나 그런 남자한테 시집가기 싫어!’라고 야무지게 말하지 그러셨어요?”

  “말도 마.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 절대로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하소연을 해 보아도 아무 소용없었어. 어른들 말이 곧 법인 세상이었으니까.”

  설령 결혼 당사자라 할지라도 여자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되는 시절이었다. 만약 남자였다면 어쨌을까? 

  “더 기가 막힌 것은 결혼식을 올린 뒤에야 남편이 애가 딸린 홀아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갑자기 낳지도 않은 사내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

  미칠 것 같은 그 기분이 이해가 되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언제 다시 들어도 답답하였다.

  “세상에. 사람들이 장모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럼 장모님 주변 어른들도 그 사실을 모르셨나요?”

  “아니. 나만 모르고 있었어. 주변 어른들은 신랑이 애가 딸린 홀아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나를 속이고 결혼을 시킨 것이지. 속아서 시집을 간 거야.”

  신부였던 장모님을 속인 사람들이 남이 아닌 가족이고 친척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신부에게 왜 그런 짓을 하였을까?  

  “아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네요. 많이 놀라셨겠네요?”

  “결혼식이 끝나자 사람들이 사내아이를 하나 데리고 왔어. 네 살 먹었다고 하더라고. 그 아이를 내 곁으로 보내면서 ‘이 사람이 네 엄마다 엄마’라고 하더라고. 깜짝 놀랐지. 갑자기 낳지도 않은 사내아이의 엄마가 된 거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었다. 

  “아이를 보고 나니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더라고. 아무 정신이 없었지. 울타리 나무를 붙들고 밤새 엉엉 울었어. 콱 죽어버리고 싶었지. 그런데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도무지 죽을 수가 없었어. 얼마나 고생하시면서, 불쌍하게 사시는 어머니인데. 딸이 죽으면 어떻게 살겠어? 이것이 내 팔자고 운명인가보다 생각했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그 사내아이는 지금의 내 손위 처남이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내 옆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모님이다.  

  “정말 어이가 없네요. 화도 나고요. 어른들이 정말 나쁘네요. 도대체 누가 왜 그런 결혼을 하게 한 것이죠?”

  “어머니가 외숙모랑 어디 가서 점을 쳤는데, 내 팔자가 홀아비에게 시집을 가야 될 운명이었다는 거야. 그래서 나 잘 살라고, 그런 결혼을 시켰다지 뭐야.”

  믿을 수 없었다. 어른들이 점을 핑계대고 계획적으로 속인 것은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무지 짐작이 안됐다.

  “말도 안돼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나 같으면 당장 도망을 갔을 거예요. 왜 도망을 안 가셨어요?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사셨어요?”

  용감하고 똑똑한 장모님인데, 맘만 먹으면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인데, 왜 그냥 살았을까? 도망을 시도해보기나 하였을까?

  “도망? 도망이라고? 지금이라면 열 번도 더 도망을 갔을 거야. 그 때는 어디로 도망을 간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해 보질 않았어. 또 집을 나간들 어디로 가겠어? 갈 곳도 없었지. 그 시절에 나는 ‘이것이 내 운명이구나.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것인가 보구나.’라고만 생각했지. 그냥 울기만 했어. 사내아이도 불쌍해 보이고.”

  인도에서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이 떠올랐다. 어린 코끼리를 말뚝에 묶어서 키우면, 나중에 커서 힘이 세 져도 작은 줄에 꼼짝 못하고 산다고 한다. 도망갈 수 있는 힘이 있어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자의 자유를 억누르는 인습(因習)의 힘은 무서운 것이었다.

  “어쨌든 그 뒤로는 어떻게 사셨나요?”

  “어쩌겠어. 죽을 수 없으니 살아야지.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지. 친정어머니를 무던히도 원망했어. 내 신세를 망쳤다고. 지금 생각하면, 친정엄마에게도 그저 미안해.”

  장모님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친정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아내의 외할머니는 딸의 그런 푸념을 평생 들으면서 살아야 했다. 아내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싫었다고 한다. 외할머니도 불쌍하다고 하였다.

  “장인과의 사이는 그런대로 좋으셨나요? ‘결혼 초기에는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이 많은 사람이어서 행복했다.’ 뭐 그런 일은 없었나요?”

  “정이 있었냐고? 정이? 정은 무슨 정. 그런 것 없었어. 늘 다투었지. 그래도 큰 딸이 태어나고 잠시, 아주 잠시 좋았었지. 그것뿐이야. 실제로 함께 산 기간은 얼마 되지도 않아. 군인이었으니까. 남편은 혼자서 늘 이동하였고. 게다가 둘째 딸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얘들 아빠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으니까.”

  아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 마흔 두 살의 장인은 간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모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장모님은 전처가 낳은 아들과 자신이 낳은 두 딸을 오로지 혼자 힘으로 키워야했다.  

    

  1960년대 초,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미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시절이다. 유교와 봉건적인 가부장제 문화는 여성에게 특히 잔인하였다. 마치 변하지 않는 자연법칙처럼 삶을 지배했다. 가족과 친인척은 가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인 줄 몰랐고, 피해 당사자는 피해자이면서도 어디 호소할 길이 없었다. 여성은, 그중에서도 며느리는 종처럼 취급되었다. 여성들의 고통에 눈을 감은 채 모두들 어둠 속에서 살았다. 

  장모님은 처녀 시절 열심히 베를 짜고 예쁘게 수를 놓았다. 당시 처녀들은 그런 식으로 결혼 준비를 하였다. 장모님은 든든하고 멋진 사내에게 시집갈 마음에 가슴 부풀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아가씨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이 되었다. 자신의 뜻에 따라 낭만적인 사랑을 하고, 또 배우자를 고를 수 있는 세상이 다가서고 있었지만, 장모님에게는 아직 그 세상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법성의 작은어머니도 작은아버지와 결혼을 하였다. 부엌 옆에 딸린 작은 방에 신방을 차렸다. 하지만 혼인 후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법성시댁에서 영광까지 걸어서 도망갔다. 남편도 싫고, 시집살이도 견디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살 길을 찾아 떠난 것이다. 대담하게. 하지만 멀리 가지 못했다. 실패하였다. 기껏 도망간 곳이 친정이었다.

  인습은 힘이 셌다.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막내딸의 장래를 걱정하던 늙은 친정어머니가 울며불며 떼를 쓰는 딸을 억지로 끌고 온 것이다. 할아버지의 줄담배. 할머니의 굳은 표정. 작은 어머니의 끝없는 흐느낌. 죄인처럼 고개를 조아리시던 작은어머니의 친정어머니. 동서를 빼돌려 도망치게 했다고 억울하게 누명을 썼던, 내내 추궁을 당하면서 시부모에게 시달렸던 어머니의 하소연과 눈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 옆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만 살피던 어린 나. 어두침침한 시골집 안방에서 벌어진 그 때 일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작은어머니는 다시 친정으로 갈 수 없었다. 늙고 백발이 성성한,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를 친정어머니를 또다시 괴롭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친정오빠들 역시 여동생이 친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하다는 이유였다. 고통스러워하는 여동생을 외면한 사람들은 바로 가족들이었다. 그 시절 세상은 그러하였다. 

  작은어머니는 시댁에서 죽거나, 아니면 시집살이를 이겨내고 살아야 했다. 다른 길이 안 보였다. 시집에서 견디고 버티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영리하고 의지가 굳센 작은어머니는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찾았다. 

  남편의 부족함을 견뎠다. 때로는 가엾게 여겼다.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억세고 사람을 차별하는 시어머니와 맞서 싸웠다. 큰 소리로 대꾸하고, 욕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계산이 빠르고 영리한 시아버지에게도 당당하게 맞섰다. 때로는 웃으면서 타협도 하였다. 쉽게 휘둘리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재산 증여 문제가 이야기되었다. 작은어머니는 할아버지와 줄다리기를 하였다.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했다. 말이 증여지 실제로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부부의 노동의 대가였다. 할아버지는 드센 며느리와 실랑이를 하면서도 돌아가실 때까지 증여 문제를 매듭짓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왜 그러셨을까? 자식을 일곱이나 낳아 키웠지만, 제법 성공한 자식도 있었지만,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돈이었다. 작은 아들과 작은며느리에게는 미안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죽기 직전까지는 땅과 집문서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놓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증여 약속 시기를 계속 연장하였다. 

  작은어머니는 분노했다. 왜 다른 아들들에게는 미리 재산을 다 주었는가? 다른 가족들이 도시에서 교육받을 때, 자신들은 시골에서 뼈 빠지게 일하지 않았는가? 더 좋은 대우는 못해줄망정, 왜 자기 부부의 고통은 외면하는가? 왜 자기 부부를 차별하는가? 

  할아버지가 미리 증여를 하지 않았던 탓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작은어머니는 친인척들의 동의를 받는 복잡한 상속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 과정은 불편하였다. 여러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듣기 불편한 말도 들어야 했다. 조카인 내게도 동의를 구하는 전화를 했었다. 

  화를 제대로 삭일 수 없었던 작은어머니는 그 일로 몸이 많이 아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때까지 지내던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였다. 그 제사는 나와 아내의 몫이 되었다. 

  시부모와 싸우며 살았지만, 시부모의 마지막 길은 작은어머니의 몫이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작은어머니가 해 주는 밥을 먹다 돌아가셨다. 많이 가르치고 잘 사는 자식들이나 손자들의 집이 아닌, 가장 못 가르치고 고생시킨 아들과 며느리가 사는 집에서. 할머니가 대퇴골 골절로 법성 집 아랫방에서 자리보전을 하다 돌아가실 때도, 같은 방에서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실 때도, 궂은일은 작은어머니가 감당하였다. 장례식도 시골집에서 치렀다. 역시 작은아버지와 작은 어머니가 가장 많이 고생하였다. 굽은 소나무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는 것이 힘들었던 작은어머니는 분노를 쏟아냈다. 그 분노는 시부모를 향한 것이었고, 인정머리 없는 세상을 향한 것이었다. 그 분노마저 없었다면 세상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두 다리에 어떻게 힘을 주고 설 수 있었겠는가?

  작은어머니가 사는 세상은 전쟁터였다. 시부모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과 부딪치고 싸웠다. 때로는 남편과 한편이 되어 다른 사람과 대적하고, 때로는 남편과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을 가엾게 여기면서 지지고 볶고 살았다. 잦은 전투 속에서 작은어머니는 전사가 되었다. 칼끝이 날카로워졌다. 종종 그 칼에 자신도 다쳤다. 

  작은 틀에서 보면 작은어머니는 시부모와 싸우고 시댁과 싸웠다. 큰 틀에서 보면 세상의 차별과 싸웠다. 여성을 억압하고 노예처럼 다루는 낡은 세상과 싸웠다. 할아버지 할머니 역시 힘든 세상을 살았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그분들 역시 자신들이 살던 시절의 환경조건과 생활방식을 넘어설 수 없었다. 

  이 사람 마음을, 저 사람 마음을, 바로 작은어머니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인습은 눈에 안 보이는 유령 같은 것이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그 힘을 작은어머니가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는가? 자신이 무엇과 싸우는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저 눈앞에 있는 사람과 싸우는 것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     


선(善)을 지향하지 않으면

불선(不善)으로 추락한다.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본능과 집단광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외로움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연과 결합하고 체제에 맹종하는 것은

스스로 노예가 되는 것이다. 

    

지배와 종속은 미숙한 관계다.

지배자도 종속자도 자유가 없다.  

    

자유롭지 않기에 사랑할 수 없다.

지배자는 착취하고 종속자는 매달린다. 

    

함께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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