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따로 가까이
장마가 끝났다. TV에 휴가 관련 뉴스가 자주 나왔다. 아내가 말을 꺼냈다.
“엄마 모시고 어디 가까운 데라도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아내가 내 의견을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 좋을까? 몸이 불편하시니 멀리 이동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일단 엄마 생각을 들어 보면 어떨까?”
매일 저녁 7시면 고혈압을 앓고 계시는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하여 건강을 살피고, 하루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아보는 아내에게 물었다.
“평소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신 곳은 없었어?”
“엄마 친구들이 목포 해상 케이블카를 탔다고 자랑했나 봐.”
아내의 말 덕분에 가야 할 곳을 쉽게 정할 수 있었다. 목포 근처에서 놀면 될 것 같았다.
“잘 됐네. 우리도 아직 목포 해상 케이블카를 안 타보았지? 게다가 압해도 쪽에 놓인 천사대교를 건너면 여러 섬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튿날 이른 아침에 서울을 출발하였다. 고속도로는 많은 여행 차량 때문에 정체와 지체를 거듭하였다. 옆에 앉은 아내는 막힌 도로를 원망하면서, 뒷좌석의 딸은 온갖 자세로 지루함을 달래면서 힘겹게 광주 장모님 댁에 도착하였다. 장모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장모님이 우리를 환대하는 방식은 음식을 해 먹이는 것이다. 대개 큰딸을 위해서 낙지를 볶는다. 손녀를 위해서 돼지갈비를 찌고, 나를 위해서 찰밥을 한다. 나는 장모님이 지어준, 소금간이 밴 찰밥을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광주에서 목포로 향하였다. 휴가철이어서 도로 사정은 좋지 않았다.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사람과 차가 밀렸다. 하지만 타고 싶었던 것 타고, 가고 싶었던 곳 가고, 맛있는 것 사 먹었다. 케이블카를 타면서, 또 천사대교를 건너면서 바다를 실컷 구경하였다. 그날 바다는 바람이 없고 파도는 고요하였다. 천사대교 가운데서 본 바다는 커다란 호수 같았다. 날씨가 맑아 바다가 시리게 푸르렀다. 섬을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장모님은 어린애처럼 좋아하였다. 며칠 동안 낮에는 이곳저곳 차를 몰고 다니면서 놀았다. 저녁에는 에어컨을 틀어 놓고 TV를 보면서 자리를 함께 한 처제네 식구들과 시시덕거리며 놀았다.
몸은 변화를 싫어한다. 베개가 바뀌니 목이 긴장했다. 자고 일어나는 시각이 변하자 머리가 묵직해졌다. 생활리듬이 무너지자 피로가 쌓였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나?’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숙면을 못 취해 얼굴이 푸석푸석해진 것 같았다. 거울을 보면서 얼굴에 영양크림을 바르던 아내가 투덜거렸다.
“화장이 잘 먹질 않네.”
장모님 역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에 돌침대로 가서 눕는 시간이 길어졌다.
‘음, 떠날 때가 된 것 같군.’
내가 딸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빠는 좀 피곤하다. 그런데 할머니도 피곤해 보이지 않니?”
“그러신 것 같아요. 좋아하는 TV프로도 잘 안 보시고. 몸이 무겁다고 하시네요.”
“아무래도 우리가 떠나야 될 것 같다. 혼자서 쓰시던 화장실을 갑자기 여러 사람이 사용하니 불편하신 것 같아. 게다가 이 더위에 샤워도 자주 못하시고.”
“사실 나도 서울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밀렸어요.”
딸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였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를 걱정하였다.
“우리가 떠나면 할머니가 서운해하지 않으실까요?”
“아니야. 오면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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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는 둘이면서도
‘우리’가 되어 하나로 어울린다.
‘너’가 ‘너’ 답고 ‘나’가 ‘나’ 다울 때
‘우리’는 참된 ‘우리’가 된다.
사랑은 차이를 엮어서 만드는 꽃이다.
가까이 서되 따로 서라.
함께 걷되 따로 걸어라.
둘은 하나가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
사랑은 역설의 세계다.